이성(理性) 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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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理性) II
  • 주일뉴스
  • 승인 2017.05.18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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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에서 이성은 성경을 상고하는 것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했다. 국어사전은 이성(理性)을 ‘다른 동물과 본질적으로 구별되는 사유하는 능력’으로 풀었기 때문이다. 사유는 생각보다 깊다. 의심, 확신 등 모든 사고를 넘나든다. 이성은 사람을 미신적인 믿음으로 인도하지 않는다. 오히려 확실한 믿음으로 안내한다. 사유하고 묵상, 상고하는 대상은 하나님과 말씀이니 성경과 이성은 뗄 수 없는 관계다.
교회에서든 믿음의 가정에서든 극단의 판단에 따른 극단에 치우친 행동은 감정이 이성을 앞지를 때 일어난다. 좋은 생각을 가졌어도 감정이 이성을 초월하면 결과가 나쁘게 나온다. 가장 중요한 이성, 곧 하나님의 말씀 앞에 무릎 꿇어야 한다. 자신의 좋은 생각도 최고의 이성에 굴복하지 않고선 오래가지 못한다. 하나님의 뜻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말씀 앞에 굴복하고 그 앞에서 받은 명령대로 나가야 승리한다. 내 생각과 주장이 하나님의 말씀을 짓누르면 반드시 늧이 생긴다. 자기 소원에 맞춘 말씀을 선택해 믿는 것은 더 큰 늧에 빠진다. 그렇게 자기 욕심에 짜 맞춘 말씀은 하나님의 것이 아닌, 내 것일 뿐이다. 진정한 순종이 필요하다. 참된 영적 굴복이 절실하다. 하나님 앞에 내 마음, 감정, 판단, 주장을 모두 무릎 꿇려야 한다. 
교회와 성도의 판단도 최고의 이성인 말씀에서 나와야 좋은 열매를 맺는다. 극단은 감정이 이성을 앞질렀기에 나쁜 열매다. 각자의 감정을 가장 합리적인 이성에 굴복시켜야 한다. 일어나는 모든 일을 객관화하고 논리 정연하게 그 이성에 무릎 꿇게 해야 한다. 교회의 혼란은 사람의 감정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크게 작동할 때 일어난다.

교회와 성도의 판단도 최고의 이성인 말씀에서 나와야 좋은 열매를 맺는다. 극단은 감정이 이성을 앞질렀기에 나쁜 열매다. 각자의 감정을 가장 합리적인 이성에 굴복시켜야 한다. 일어나는 모든 일을 객관화하고 논리 정연하게 그 이성에 무릎 꿇게 해야 한다.

시무언은 “이성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이로써 주신 믿음을 확인하고 더 큰 믿음으로 나아간다”고 했다. ‘냉정한 이성’, ‘차디찬 이성’이란 말을 썼다. “우리의 믿음은 감정적인 것이 아니다. 분명히 알고서 순종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시가 먼저 있고, 그 계시를 알고서 순종하는 것이다. 그러니 냉정한 이성이 감정을 이기고 순종하는 것이다.”
또 “계시에 순종하려는 차디찬 이성은 나에게는 괴로운 것이다. 내 감정은 괴로워도,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순종하는 것이다.” 헌신의 때에도 역시 차디찬 이성으로 기도하고 헌신해야 한다. “많이 드리는 게 헌신이 아니다. 감정을 따라 흥분해서 헌신한다면 하나님은 헌신이라 여기지 않으시고 자살이라 보신다”고도 했다.
듣기 좋은 말에 사람의 감정은 쏠린다. 반면 듣기 싫은 말은 이성으로 내쳐버린다. 사실 그 반대로 해야 승리한다. 성경은 우리 육체와 감정에 굉장히 듣기 싫은 말씀으로 가득 차 있다. 합리적 이성인 하나님의 말씀은 당연히 우리 감정을 꼬집는다. 참 신자라면 듣기 싫은 말을 하는 사람을 가까이 해야 한다. 
지옥이나 헌금에 관한 설교를 하지 않는 설교자가 훌륭한 주의 종인 것은 아니다. 돈에 관한 설교를 가장 많이 하신 이가 예수시다. 천국과 지옥에 관한 가장 빈번한 설교를 하신 이가 그리스도시다. 돈에 관한 설교를 많이 했다고 하여 그가 욕심쟁이인가? 지옥에 관한 설교를 많이 한다고 하여 그가 심판자나 협박자인가?
예수는 심지어 이런 말씀도 하셨다. “내 말이 있을 곳이 없으므로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요 8:37). 우리에게 귀가 없거나 청력이 없어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니다. 관념, 이기주의, 편견, 선입견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가로막는다. 자기감정들이 최고의 이성을 앞지르는 것이다.
계시록의 일곱 교회는 각각 하나님께서 맡겨두신 촛대가 있었다. 촛대가 옮겨지지 않으려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이성’과 성령이 주시는 객관적 ‘증거’와 ‘논리’ 앞에 우리 감정과 주장을 철저히 무릎 꿇려야만 한다. 

참조: 『요한복음강해 4』, 2004년 7월 설교

박한상/월산재단 사무국장 http://ruras.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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