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눌려 엉겨버린 어머니의 가슴속 외침
상태바
삶에 눌려 엉겨버린 어머니의 가슴속 외침
  • 주일뉴스
  • 승인 2017.05.18 14: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제라도 어머니 가슴 깊은 곳에 엉겨있는 외침을 자세히 들어 드리고 그 뜻을 존중해야겠다. 무릎에 힘이 없어 의지할 이가 필요할 때 마지막 손을 잡아 드리고 싶다. 이런 내 맘을 이해해주고 함께 사시는 날까지 잘 잡수시고 잘 주무시면 좋겠다.

외출 전 아침밥과 약을 챙겨드려야 한다는 바쁜 마음에 어머니를 서둘러 식탁에 앉혔다. 어머니는 아직 잠이 덜 깨셨는지 “밥을 왜 그리 일찍 먹냐”며 반쯤 감은 눈으로 투정을 하셨다. 내가 급한 마음에 “뭐가 일러? 지금 시간이 몇 신데”하며 큰소리를 내자 오히려 어머니가 버럭 소리를 지르시며 분명 열시가 넘었음에도 아홉시밖에 안됐다며 억지를 쓰셨다.     
갈수록 심해지는 어머니의 억지는 가족들을 힘들게 하고 있었다. 그 정도가 얼마나 심한지 일하고 들어온 사위를 보고 욕을 하거나 “남의 집 와서 밥을 많이 먹는다”며 밥 먹는 젓가락을 치기도 했다. 심지어 밥도 맘대로 먹지 못하는 아빠가 불쌍하다며 항의하는 손녀들의 머리채를 잡아당기기도 했다. 그 모습에 놀라 내가 비명을 지르며 바라보면 똑바로 쳐다본다며 내 눈을 찌르려고까지 했다. 그럴 때면 너무 당황스러워 말도 제대로 안 나왔다. 제재하면 더 크게 흥분을 하시니 어찌할 바를 몰라 혼란스러운 나날을 보내야만 했다.   
어머니는 팔 년 넘은 병원생활에서 쌓인 노여움을 공격적인 행동으로 표출하셨다. 가장 힘든 것은 식사시간에 섬뜩한 눈빛으로 가족을 노려보며 욕을 해대는 바람에 함께 밥 한 끼 제대로 함께 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아무리 친어머니라고 해도 인내의 한계를 넘어 화가 나기 시작했다. 요양원에 계시는 것이 자식으로서 마음이 아파 집에 모신 것이 육 개월 남짓. 남편은 장모님이 불쌍하다며 환자려니 이해하자고 해주어 고마웠지만, 한편으로 아이들에게 미안해 병원 상담을 신청할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는 전쟁을 거치며 배고픔과 두려움 속에서 자식을 키우며 힘겹게 사셨다. 그러니 뭐든지 풍족한 지금이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청춘은 어느새 훌쩍 가버리고 늙어버린 자신의 모습을 보며 정신적으로 분노가 가득 차 있는 것도 같다. 하지만 현실을 살아야 하는 우리 가정을 위해 어머님 마음만 헤아릴 수가 없어 다른 사람의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결국 평일에는 요양보호사가 방문하여 어머니의 수발이나 살림을 도와주기로 하고, 주말에는 아들들이 어머니를 모시고 외출과 외식을 하기로 했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그나마 여유시간을 가지게 됐다. 또한 아이들도 외할머니와 간식을 먹으며 자연스럽게 대화를 함으로써 웃으며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어머니가 치매에 걸리시기까지 겪어온 고통을 떠올리면 마음이 먹먹해진다.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의 짐까지 짊어지고 어머니는 오남매를 품고 힘겹게 사셨다. 그런데도 딸로서 마음 편히 대화해 본적이 없고, 제대로 위로해 드린 적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 왈칵 눈물이 났다. 전화비 많이 나온다고 성화를 부리셔서 통화 한 번 실컷 하지 못했다. 오히려 자주 집에 오지 말라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고는 서운해 하기도 했다. 
어머니는 당신의 꿈은 시대 앞에 묻고 배움의 소망을 자식에게 주기 위해 삶 전체를 희생하며 사셨다. 그런 어머니의 삶을 돌이켜 보자니 안쓰러운 마음이 물밀 듯 밀려온다. 얼마 남지 않은 삶에서 본인의 주장을 조금 하려는데 귀하게 키운 자식이 그 뜻을 몰라주니까 마지막 남은 분노를 표출하고 계신 것은 아닐까? 
이제라도 어머니 가슴 깊은 곳에 엉겨있는 외침을 자세히 들어 드리고 그 뜻을 존중해야겠다. 무릎에 힘이 없어 의지할 이가 필요할 때 마지막 손을 잡아 드리고 싶다. 이런 내 맘을 이해해주고 함께 사시는 날까지 잘 잡수시고 잘 주무시면 좋겠다.

임하초 수필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