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필요한 각별한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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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필요한 각별한 깨달음
  • 주일뉴스
  • 승인 2017.05.11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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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이든 분들과 이야기 하다보면 재미를 떠나 마음의 풍요를 얻을 수 있다. 그들의 지난 삶을 듣는 것은 그들의 인생을 짧게나마 경험해보는 것이다. 만일 그것을 내가 젊어서부터 알았더라면 큰 지혜를 얻고 무의미한 방황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건물 주차관리실 아저씨는 아버지와 동향 사람이다. 그런데 어찌나 성격이 까다롭고 불같은지 조금만 주차선을 지키지 않으면 호되게 꾸지람을 퍼붓는다. 심지어 처음 보는 방문객들과도 자주 큰소리로 언쟁을 벌이기 일쑤다. 건물 관리까지 도맡은 그는 화장실이고 계단이고 휴지하나라도 눈에 띄는 날이면 범인(?)을 알아내려고 도끼눈을 뜨고 드나드는 사람들을 째려본다. 한번은 인테리어를 고치느라 잠시 물건을 내리려고 주차한 사람과 시비가 붙어서 오전 내내 골목이 다 울리도록 소리치는 걸 아버지가 겨우 말리시고는 호주머니에 담배 값을 찔러주어 달래기도 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병원을 찾아오는 환자들도 그를 슬슬 피해 다녔다. 나조차도 웬만하면 그와 마주치지 않으려고 다른 출입구로 돌아갈 정도였다. 어쩌다 길에서 마주치기라도 하면 나를 붙들고 ‘왜 그렇게 피곤해 보이느냐?’, ‘이렇게 일찍 어딜 가는 것이냐?’, ‘내 얼굴에 점은 언제 빼 줄 거냐?’ 등 이것저것 물어볼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어른이 물어보는데 대충 대답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내 일 바쁜 건 제쳐 두고 종종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사실 아저씨는 무슨 악의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었다. 주차관리 일을 오래 하다 보니 사소한 다툼이 많아져서 점점 거칠어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오히려 측은하고 죄송한 마음도 느껴졌다. 나는 아저씨와 가끔 마주치게 되면 많은 이야기를 나누려고 노력했다. 
아저씨는 공무원 생활을 오래 하다가 퇴직하고 몇 년 전부터 주차관리 일을 하고 있었다. 자식들도 멀리 떠나고 혼자 있기 적적하여 일이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것이다. 그는 이 일도 보통 신경 쓰이는 게 아니라며 푸념을 늘어놓았다. 
어느 날 필요한 몇 가지를 사려고 근처 마트를 들렀다. 그런데 마트 코너를 돌다가 아저씨를 만났다. 속으로 ‘아, 잘못 걸렸구나…’ 하면서도 겉으로는 웃으며 인사를 했다. 그리고 “여기까지 웬일이세요?” 하고 여쭈었다. 그렇게 시작한 대화가 십여 분이 지나도 끝나지를 않고 내가 산 물건 하나하나를 설명하는 것까지 이어졌다. 아저씨는 모든 일에 관심이 많았다. 마지막으로 딸기잼을 사야한다고 했더니 내 손을 잡아끌고는 쌓여있는 잼 중 어떤 게 맛있는 건지 하나하나 설명을 했다. 아저씨는 내가 계산을 하고 그 곳을 나온 뒤로도 계속 마트 안을 서성였다. 그 쓸쓸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문득 아버지 생각이 났다.
아버지들은 나이가 들면 생각이 단순해지고 참견이 많아진다. 간혹 말 수가 적어지는 사람도 있지만 수다스러워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주변에 사람이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외로움을 잘 느끼고 혼자 우두커니 생각에 잠기는 일도 많아진다. 사람에 대한 그리움은 삶에 대한 애착일 것이다. 열심히 살아온 끝에 이제 비로소 안보이던 것들이 보이는 것일 테다.
그래서 나이든 분들과 이야기 하다보면 재미를 떠나 마음의 풍요를 얻을 수 있다. 그들의 지난 삶을 듣는 것은 그들의 인생을 짧게나마 경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그것을 내가 젊어서부터 알았더라면 큰 지혜를 얻고 무의미한 방황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내가 정말로 후회하는 것은 누군가에게 묻지 않고 내 잘난 맛에 취해 살아온 것이다. 이제 와 돌이켜보면, 지난날이 어리석음의 연속이었던 것 같아 후회가 밀려온다. 이런 탓에 누구에게나 각별한 가르침이 필요한 것이리라.  
생각을 하는 것은 우리가 가진 특권이다. 그런 우리가 일생을 살면서 구하는 것은 참된 깨달음이다. 오늘도 나는 주변에서 혹시 그 참된 깨달음이 스쳐가지 않을까 두리번거린다. 

이해령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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