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킬로그램의 신비, 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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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킬로그램의 신비, 뇌
  • 주일뉴스
  • 승인 2017.05.11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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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는 나의 생존을 책임진다. 뇌는 ‘나’의 모든 경험을 경험하는 주체이다. 뇌는 ‘나’를 ‘나’로 있을 수 있게 하는 어제까지의 나의 삶의 궤적을 기록하고 기억한다. 뇌는 ‘나’라는 사람을 규정하는 윤리와 도덕을 만들어낸다. 

뇌는 아무 것도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다. 사실 뇌는 어두컴컴한 두개골 안의 뇌척수액에 둥둥 떠 있는 1.4 킬로그램의 단백질 덩어리에 불과하다. 게다가 뇌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뇌에는 근육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근육질의 몸매를 좋아하는 성향이라면 뇌에는 전혀 매력을 느끼지 못할 지도 모른다.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실제 그대로인가?
뇌가 해석한 방식으로 경험하는 것인가?

그러나 반대로 뇌의 도움이 없으면 우리는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이 무엇인지 전혀 알 수 없다. 말 그대로 뇌가 없으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한다’. 
눈은 빛을 모아서 망막에 상(像)을 맺게 하는 일을 할 뿐이다. 망막에 맺힌 다양한 색상과 밝기를 가진 빛은 일련의 전기신호로 바뀌어 시신경을 통해 뇌로 전달된다. 뇌가 그 전기신호를 ‘해석’할 때에 비로소 우리는 ‘본다’.
듣는 것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비싼 돈을 주고 티켓을 구입해서 찾아간 콘서트장에서 천상의 소리에 비견할 만한 감동적인 연주를 들었다 하는 것도, 그것이 일반적인 소음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구분해내는 것은 결국 뇌이다. 뇌는 청신경으로부터 전달받은 전기신호들을 ‘해석’하고 비로소 우리는 ‘듣는다’.
뇌가 받아들이는 신호들은 그것이 눈에서 온 것이든 귀에서 온 것이든 혹은 코나 혀에서 온 것이든 상관없이 모두 전기신호이다. 뇌는 그것을 뇌의 각각 다른 부분에서 받아들이고 각각 다른 종류의 자극으로 해석해낸다. 뇌는 시신경이 전달해 준 전기신호를 통해 ‘보며’, 청신경이 전달해 준 전기신호를 통해 ‘듣고’, 코에서부터 올라온 전기신호를 통해 ‘냄새’를 맡으며, 미각세포가 전해준 전기신호를 통해 음식의 ‘맛’을 구별한다. 우리의 뇌는 두개골 속 그 어두운 공간에서 오직 전기신호만으로 세상을 경험한다. 그리고 뇌가 전기신호로 경험하는 것만이 주체로서의 ‘나’가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것이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우리는 실제 세계를 보고 듣고 경험하는 것이 아니다. 뇌가 해석한 방식으로 보고 들으며 경험하는 것이다.
뇌는 근육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약골이다. 하지만 신체의 다른 근육들은 뇌의 통제를 받는다. 뇌는 어두운 두개골 안에서 전기신호를 보내 신체 곳곳의 근육들을 자극하고 운동을 통제한다. 그것은 때로 우리가 ‘의식’하는 운동일 경우도 있지만, ‘의식’ 단계에서는 깨닫지 못하는 운동 또한 뇌의 통제를 받는다. 이것은 뇌가 ‘나’의 생존을 주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나’ 자신을 인식하는 영역보다 더 낮은 단계에서 뇌는 몸 전체의 생명작용을 조절하고 ‘나’라는 의식이 존재할 수 있는 바탕을 만든다.

우리의 지성과 도덕성을 만들어내는 뇌

뇌는 보다 높은 수준의 작용에도 관여한다. 뇌는 우리의 지성과 도덕성을 만들어낸다. 이와 관련해서 언제나 인용되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1843년 9월 13일 미국 버몬트 주의 어느 철도공사현장에서 다이너마이트 폭발사고가 일어났다. 피니어스 게이지(Phineas Gage)라는 인부는 이 사고로 인해 철근이 머리를 뚫고 들어가는 치명적인 부상을 입게 된다. 기적적으로 그는 죽지 않고 살아났다. 그런데 건강을 회복한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뇌에 부상을 입은 사람들이 흔히 경험하는 것과 같은 장애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의 기억에는 문제가 없었으며, 연산능력이나 언어능력에도 별다른 장애는 관찰되지 않았다. 달라진 것은 그의 인격적 성향이었다. 사고 이전 그는 당시의 보편적인 도덕과 윤리와 질서를 충실히 따르는 매우 모범적인 인물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사고를 당한 이후 그는 거칠고 음담패설을 좋아하며 술을 좋아하는 방탕하고 게으른 사람이 되었다. 결국 그는 사회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었고 비참하게 생애를 마감했다.
피니어스 게이지는 사고로 전두엽에 큰 손상을 입었던 케이스였다. 그는 사고 이전의 자신의 기억을 완벽하게 보전할 수 있었지만 이전의 인격을 보전할 수는 없었다. 오늘날 학자들은 인간의 전두엽이 매우 다양한 분야를 관장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전두엽은 여러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 단기 기억, 정서의 균형, 창의성, 계획, 의사결정, 행동의 억제 등과 연관되어 있다. 전두엽은 지성과 사고력, 기억과 감정, 윤리와 도덕적 판단, 의지력 등에 관련하고 있는 것이다. 

기억은 형태를 바꾸어 다양하게 저장된다?

뇌가 기억에 관여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는 치매환자들에게서 그 사례를 발견할 수 있다. 1953년 8월 23일 미국의 27세의 어떤 젊은이는 간질을 치료하기 위한 내측두엽을 절제하는 뇌수술을 받았다.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자주 나타나던 간질발작이 확실히 줄어들었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현상이 나타났다. 그는 수술 이전의 기억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수술이후에 일어나는 일들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는 매일 아침, 자신이 왜 병원에 입원해 있는지를 이해하지 못했고, 여전히 자신을 27세의 청년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노인이 된 후에도 늙어버린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오늘날 내측두엽에는 장기기억과 관련된 많은 부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표적인 부분이 해마이다. 해마는 뇌의 다른 부분에서 보낸 정보들을 장기기억의 형태로 바꾸어 저장하는 곳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밖에도 전두엽 등 뇌의 여러 부분이 여러 형태의 기억에 다양하게 관여한다고 알려지고 있다.
기억과 관련해서 중요한 일화가 하나 있다. 1986년 1월 28일 미국 케네디 우주센터에서는 우주왕복선 챌린저호가 발사되었다. 당시 우주탐사는 큰 인류의 관심을 모았는데, 이는 최초로 민간인 우주비행사가 참여했기 때문이었다. 크리스타 매콜리프(Christa McAuliffe)라는 고등학교 교사가 그 주인공이었다. 그러나 지구 온 인류가 텔레비전으로 지켜보고 있던 이 일은 곧 비극으로 끝났다. 이륙한지 불과 73초 만에 챌린저호는 폭발했고 우주비행사들은 전원 사망하고 말았다.
이 일이 있은 후, 인지심리학자 울릭 나이서(Ulric Gustav Neisser)는 자신의 강의를 듣는 코넬대학교 학생 106명을 대상으로 폭발사고 바로 다음 날, 그 소식을 언제 어디서 누구와 함께 들었으며 당시의 기분이 어떠했는지 등, 그 순간의 상황을 자세히 적어서 제출하도록 하였다. 그로부터 2년 6개월 후 그는 같은 학생들로부터 과거의 사건을 추억하여 다시 기록하게 하였다. 두 기록을 비교하였을 때에 놀라운 결과가 나타났다. 전체 응답자의 25%가 완전히 다른 대답을 한 것이다. 나머지 응답자의 절반 이상도 세부적인 내용은 완전히 엉터리였다. 2년 6개월 전의 진술과 비슷하게 대답한 사람은 전체의 10%를 넘기지 못했다. 
더욱 재미있는 현상은 그 다음에 나타났다. 잘못된 응답을 한 사람들에게 자신이 2년 반 전에 직접 썼던 기록을 보여주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그들은 자신이 과거에 작성했던 기록을 부정했다. 그들은 기록들이 자신의 필체인 것을 인정했지만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쪽이 옳다고 주장했다. 

과거는 기억하는 것? or 창조하는 것?

이 사례를 통해서 우리는 기억이란 결국 뇌의 작용이며, 실제보다 큰 변형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사실 뇌는 일어난 일들을 그대로 기억하는 것이 아니다. 뇌가 하루에 처리해야 하는 정보의 양은 엄청나다. 만약 그 모든 정보를 모두 기억하려 한다면 뇌는 잠시도 쉬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뇌는 그 정보들 중 기억할 가치가 있는 것만을 추려낸다. 그것들은 대개 생명에 큰 위협이 되거나 혹은 반대로 생명을 유지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것들이다. 우리가 공부한 것을 쉽게 잊는 까닭은 그것이 별로 내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뇌가 판단했기 때문이다. 반대로 나를 괴롭게 한 사람은 잘 잊히지 않고 용서가 되지 않는 것은 뇌가 그 사람을 생존에 위협이 되는 요소로 분류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누군가를 진정으로 용서하고 품을 수 있다면 그것은 우리 자신의 뇌의 근본적인 작동원리를 거스르는 진실로 놀라운 일임에 틀림없다. 
장기기억으로 보관하는 과정에서 기억을 구성하는 대부분의 요소는 떨어져 나간다. 뇌는 매우 필수적인 극소수의 정보만을 남긴다. 여기에는 꼬리표가 붙는다. 예를 들어 “이 일은 매우 위험한 사건이었음. 주의 요망!” 이렇게 말이다. 우리가 과거를 추억할 때에 떠오르는 아련한 그리움이나 반대로 공포나 혐오감 같은 감정들이 바로 이런 꼬리표에 해당한다. 그렇게 저장해두었던 기억을 다시 되살리는 과정에는 당연히 수많은 빈틈이 생길 수밖에 없다. 뇌는 그 빈틈들을 평소 얻어지는 경험들로 채워 넣는다고 한다. 그러니까 따지고 보면 우리는 과거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창조해 내는 셈이다!

영혼과 뇌를 어떻게 구분해야 하는가?

정리하자면 뇌는 적어도 물질적 수준에서는 ‘나’를 ‘나’로서 존재할 수 있게 하는 장본인인 셈이다. 뇌는 나의 생존을 책임진다. 뇌는 ‘나’의 모든 경험을 경험하는 주체이다. 뇌는 ‘나’를 ‘나’로 있을 수 있게 하는 어제까지의 나의 삶의 궤적을 기록하고 기억한다. 뇌는 ‘나’라는 사람을 규정하는 윤리와 도덕을 만들어낸다. 
그렇다면 우리는 영혼과 뇌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 현대의 뇌과학은 전통적으로 영혼의 작용으로 간주되던 모든 것을 뇌의 작용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우리는 이에 대하여 무엇이라 응답할 것인가?

뇌가 받아들이는 신호들은 그것이 눈에서 온 것이든 귀에서 온 것이든 혹은 코나 혀에서 온 것이든 상관없이 모두 전기신호이다. 뇌는 그것을 뇌의 각각 다른 부분에서 받아들이고 각각 다른 종류의 자극으로 해석해낸다.

 

문상호 목사/ 기쁨가득한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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