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의 커넥텀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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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의 커넥텀이다 !
  • 주일뉴스
  • 승인 2017.04.28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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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스찬 승이 ‘나는 나의 커넥텀’이라고 선언하는 것은 고전적인 그리스도인이 ‘나는 곧 내 영혼’이라고 선언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다만 전통적으로 기독교에서 영혼으로 표현되던 거의 모든 것들이 현대과학기술에서는 뇌에 관한 것으로 기술될 따름이다.

리처드 도킨스는 유전자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외쳤다. 한편 이와는 정반대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있다. 그는 메사추세츠 공과대학(Massachusetts Institute of Technology, MIT)의 교수이며 한국계 미국인인 세바스찬 승(Sebastian Seung, 승현준)이다. 그는 물리학자로 시작하여 뇌과학의 권위자가 되었다. 그는 우리가 단순히 유전자들의 조합이라는 생각을 거부한다. 유전자가 우리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유전자가 단지 출발점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유전자는 단지 출발점에 불과,
결정하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 

유전자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생각을 대중적으로 가장 잘 설명해 줄 수 있는 예는 일란성 쌍둥이일 것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어린 시절부터 서로 전혀 다른 환경, 다른 문화권에서 자라난 일란성 쌍둥이는 그런 차이들에도 불구하고 놀랍도록 서로 닮았다. 외모가 닮는 것이야 당연하지만, 다른 것들도 정말 신기하리만치 닮아있다. 그들은 성격도 생각하는 방식도 비슷하다. 무엇인가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들은 습관적으로 같은 선택을 한다. 만약 자라난 문화권이 비슷하다면 그들은 선택하는 음식이나 음악 장르까지도 비슷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서부터 서로 떨어져서 자란 일란성 쌍둥이는 전혀 다른 사람이다. 그들은 결코 유전자가 결정지을 수 없는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간다. 그들은 서로 다른 이들을 만나고, 다른 경험을 하며, 다른 기억을 갖는다. 물론 무의식중 나타나는 성향은 비슷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서로 다른 길을 걸었고, 따라서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어쩌면 각기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기에 가끔씩 보이는 너무나 비슷한 모습에 놀라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세바스찬 승이 주장하는 것은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하다. 유전자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유전자는 단지 출발점에 지나지 않는다. 결정하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그렇다면 그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모든 것을 결정하는 ‘유전자’ 대신에, 그가 ‘나’를 결정하는 주체의 자리에 세우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그는 그것을 우리의 뇌에서 찾는다. 그는 말한다. “나는 나의 커넥텀(connectome)이다!”

뇌는 복잡하게 연결된 수많은 전선 가닥
커넥텀은 전선 가닥들의 연결 지도 

커넥텀은 우리에게 생소한 개념이다. 커넥텀이란 뇌신경들의 연결망을 총체적으로 의미한다. 그것이 왜 중요한가를 이해하려면 우리의 뇌를 알아야만 한다. 우리의 뇌는 신체 여러 부분의 감각기관으로부터 다양한 형태의 감각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분석한다. 그 정보가 가리키는 것이 맛있는 음식처럼 나를 즐겁게 하는 것이라면 나는 더욱 가까이 가야할 것이다. 하지만 만약 그것이 나를 위험하게 하는 것이거나 불쾌하게 하는 것이라면 나는 그것으로부터 멀어져야 한다. 
또한 뇌는 실시간으로 무엇을 할지 판단하고 그에 따른 적절한 행동을 취하도록 몸의 여러 부분의 근육을 움직이는 신호를 보낸다. 뇌는 이런 경험들에서 중요한 정보를 따로 추출해서 ‘기억’한다. 기억은 나중에 유사한 상황에서 더욱 적절한 반응을 보이는 데에 매우 큰 도움이 된다. 
인간의 뇌는 단지 생존을 위해서만 반응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그보다 더욱 고차원적인 정신작용을 할 수 있다. 인간은 예술을 사랑하고 문화를 누린다. 또한 윤리와 도덕을 알고 실천할 수 있다. 인간은 당장의 생존에 직접적인 연관이 없을지라도 우리가 살아가는 우주 그 자체에 대한 탐구를 멈추지 않는다. 심지어 하나님을 알고 신앙할 수 있다. 이 모든 일이 우리의 뇌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신앙마저도 그것이 제아무리 철저한 영혼의 작용이라 할지라도, 오직 육체를 의지하여서만 가능하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여전히 뇌와 어떤 식으로든 연관되어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뇌는 이 모든 복잡한 정보를 어떻게 처리하며 이 모든 일을 어떻게 해 나가는 것일까? 뇌는 단지 1400그램의 단백질 덩어리에 지나지 않는다. 이 단백질 덩어리를 구성하는 것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뇌세포(neuron, 신경세포)이다. 뇌세포는 마치 성게처럼 삐죽삐죽한 가지들이 돋아있어서 이 가지들을 통해 다른 신경세포로부터 정보를 받아들인다. 뇌세포는 받아들인 정보들을 곧장 전기 자극의 형태로 다른 신경세포들에게 전달한다. 뇌세포에는 축삭이라고 불리는 매우 긴 특별한 가지가 있어서 이 가지를 따라 전기 자극은 멀리까지 전달된다. 축삭의 끝은 다시 여러 갈래로 갈라져서 다른 신경세포들과 만난다. 그러니까 우리가 뇌세포 혹은 신경세포라고 부르는 것은 매우 다양한 연결방식이 가능한 일종의 전선(電線)이라고 할 수 있다. 
각각의 정보를 받아들이고 처리하는 과정에서 뇌세포들은 여러 다른 뇌세포와 연결되어 수많은 회로를 형성하게 된다. 이렇게 형성되는 회로들을 시냅스라고 한다. 그러니까 인간의 뇌라는 것은 수많은 시냅스의 복합체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시냅스들의 전체 구조가 바로 세바스찬 승이 말하는 커넥텀이다. 다시 말해 인간의 뇌를 아주 거칠게 비유한다면, 매우 복잡하게 연결된 수많은 전선 가닥과 같다. 커넥텀이란 이런 전선 가닥들이 어떻게 연결되어있는가를 보여주는 지도인 것이다. 

아직까지 인간이 커넥텀을 완전히 알고 있는 생물은 ‘예쁜꼬마선충’이 유일하다. 이름과 달리 실제로는 별로 예쁘지 않은 이 녀석은 길이가 1밀리미터 남짓에 불과하고, 흙속의 미생물을 섭취하며 살아간다. 이 벌레는 고작 304개의 신경세포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학자들은 컴퓨터 프로그램에 이 벌레의 뉴런들의 연결망 구조와 감각기관, 운동기관을 입력했다. 학자들은 이 벌레에 어떤 소프트웨어도 입력하지 않았다. 단지 예쁜 꼬마선충의 신경세포들이 연결된 정보를 입력했을 뿐이다. 그랬더니 이 가상의 벌레는 컴퓨터가 구현한 가상환경 속에서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학자들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이번에는 실제로 현실에 존재하는 로봇에 ‘예쁜꼬마선충’의 커넥텀을 입력했다. 그랬더니 이 로봇은 어떤 별도의 인공지능 알고리듬(프로그램을 작성하는 기초)을 입력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알아서 장애물을 피해 다니기 시작했다. 이런 연구들을 통해 학자들은 전기 자극을 전달하는 신경세포들이 단지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만으로도 이 벌레가 장애물을 피하고 먹이를 먹는 생명활동을 얼마든지 해 낼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예쁜꼬마선충’은 현재까지 알려진 가장 간단한 커넥텀을 가진 생물이다. 그렇다면 과연 더 복잡한 커넥텀을 갖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 벌레는 겨우 304개의 신경세포가 있을 뿐이지만 사람의 뇌에는 1000억 개의 신경세포가 있다. 인간의 뇌에서 신경세포들이 연결되는 시냅스는 10조 개에 달한다. 

우리는 주체적 선택의 존재
선택과 경험으로 결정되는 우리 

 
세바스찬 승은 이 정도의 엄청난 신경세포들의 연결망은 그 자체로, 거기에 다른 어떤 소프트웨어-예를 들면 ‘영혼’ 같은-의 도움 없이 고차원적인 사고가 가능한 ‘인간’으로 존재하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여기에서 ‘인간’으로 존재할 수 있게 하는 모든 것에는 흔히들 생각하는 지능만 포함된 것이 아니다. 이성적인 판단능력과 정서적인 공감능력 등을 포함한 ‘나’라는 사람의 인격 전부가 포괄된다. 뿐만 아니라 무의식적인 습관, 운동능력 등까지도 포함한다. 
그러니까 말 그대로 내가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모든 것이 뇌신경들의 연결망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다. 나의 기억, 내가 좋아하는 음악, 색깔, 냄새, 음악, 나의 가치관, 윤리의식, 욕망, 꿈 등 이 모든 것은 뇌신경들의 연결망을 통해 구현된다. 나는 나의 커넥텀인 것이다!
확실히 세바스찬 승의 견해는 리처드 도킨스의 유전자 결정론의 한계를 극복하는 매력적인 대안인 것처럼 보인다. 그의 견해에서 우리는 더 이상 유전자가 이미 결정해 놓은 성향을 따라 살아야 하는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주체적인 선택을 하는 존재이며 우리가 하는 선택과 우리가 하는 경험이 우리 자신을 결정한다.

현대과학과 기독교가 만나는 현장,
영혼의 본질에 대하여 숙고해야 할 때 

세바스찬 승이 언급하는 것처럼 현대과학기술은 이러한 선택이 이루어지는 모든 과정과 그 결과 결정되는 우리의 모든 성향 등이 결국 뇌에서 이루어지는 작용이라고 설명하는 것 같다. 그러니까 세바스찬 승이 ‘나는 나의 커넥텀’이라고 선언하는 것은 고전적인 그리스도인이 ‘나는 곧 내 영혼’이라고 선언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다만 전통적으로 기독교에서 영혼으로 표현되던 거의 모든 것이 현대과학기술에서는 뇌에 관한 것으로 기술될 따름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여기서 다시 과학과 신학, 현대과학과 기독교가 만나는 현장에 서게 된다. 무엇이 인간을 인간일 수 있게 하는가? 무엇이 나를 나로 존재할 수 있게 하는가? 영혼의 본질은 무엇인가? 이에 대해 숙고해야 할 때이다. 

문상호 목사/기쁨가득한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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