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녀의 마음에 새기는 할아버지의 자장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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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녀의 마음에 새기는 할아버지의 자장가
  • 주일뉴스
  • 승인 2017.04.28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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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잠이 오지 않아서 예슬이의 잠자는 모습을 찬찬히 내려다본다. 뽀얗고 둥근 얼굴이 오늘따라 유난히 더 예쁘다. 이렇게 몇 밤만 자면 꽤 오랜 기간 얼굴을 볼 수가 없다. 벌써부터 서운함이 밀려온다. 

토요일 저녁 무렵에 어김없이 손자 재준이네가 동탄에서 올라왔다. 수년간 매주 그래왔건만, 토요일만 되면 기다려진다. 그 이유는 그날이면 볼 수 있는 손자손녀들 때문이다. 나도 역시 손자바보가 다 된 모양이다. 다음날 주일 오전엔 가족 삼대가 예배에 참석해 함께 은혜를 받았다. 예배를 마치고 교우들과 문안하며, 재준이가 회사의 후원으로 유학길에 오른다는 소식을 전했다. 교우들은 자기 일인 것처럼 다들 기뻐하며 축하해 주었다. 나도 모르게 자식 자랑을 한 꼴이 되어 조금은 겸연쩍었다.
이웃에 사는 조카딸 순분이가 저녁을 사겠다고 집을 찾았다. 재준이네가 해외로 나가면 오랫동안 볼 수 없다고 식사를 함께 나누자는 것이었다.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가 그냥 조용히 집에서 시켜먹기로 뜻을 모았다. 마침 순분이네도 세 식구가 곧 미국으로 장기여행길에 오른다고 했다. 모처럼 좋은 기회이니 잘 다녀오라 했다. 이래서 피붙이는 늘 애틋한가 보다. 
저녁 메뉴는 중국음식으로 통일했다. 여섯 살 난 막둥이 예슬이는 가장 맛있는 음식이 자장면이란다. 맛있게 음식을 먹고 정담을 나눈 후 각자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지만, 예슬이는 우리 집에서 한 주 간 함께 있기로 했다. 어미가 그동안 갈아입힐 옷 몇 가지를 건네주고 다른 식구는 동탄 집으로 내려갔다. 
예슬이는 제 할머니와 함께 늦게까지 종이접기도 하고 장난감도 만들고 읽어주는 동화를 듣기도 하며 놀았다. 그러더니 졸린 눈을 비비며 방으로 자러왔다. 손녀와 함께 이불 속에 들어가 나란히 누웠다. 가만히 안아보니 더욱 귀엽고 사랑스럽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이 아이가 떠난다 하니 마음이 서늘해진다. 이렇게 예쁜 예슬이를 한동안 못 보게 된다고 생각하니 그럴 수밖에….  
이불 속에서 말없이 누워있는 예슬이 손을 꼬옥 잡는다. 
“예슬아, 할아버지가 예슬이 너무 보고 싶으면 어쩌지?” “사진 보면 되잖아. 내가 할아버지 보라고 탁자 위에 내 사진 만들어 놓았잖아!” “아니, 예슬이 얼굴 직접 보고 싶으면 말이야.”
“그럼 영상 통화로 전화하면 되잖아!”
손녀의 말에 막힘이 없다. 헤어짐이 아무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치사랑은 없다더니 그렇지 싶다. 어둠 속에서도 두 눈에 맺히는 눈물을 감춘다. 목까지 자꾸만 메어온다. 
아이들과 헤어질 날이 가까워 올수록 왠지 서글프고 쓸쓸하다. 활력도 집중력도 떨어지고 도통 맥이 없다. 자꾸만 손자손녀 얼굴만 아른거린다. 아마도 노파심일 게다. 나이 먹은 탓일 게다.  
잠이 오지 않아 옆에 누운 예슬이 손을 세게 잡는다. 예슬이도 아직 잠이 들지 않은 모양이다. “예슬아, 우리 자장가 부를까?” “그래, 할아버지랑 같이!” 
우린 「섬 집 아기」를 부르며 잠을 청했다.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파도가 들려주는 자장노래에’ 까지 부르는데 예슬이가 노래를 멈추며 “아니야, ‘바다가 불러주는’이야”라고 한다. 
참 영특한 아이라고 생각하며 고쳐 불렀다. 잔잔한 파도가 들려주는 노래를 연상하며 연거푸 몇 번을 부르다보니 예슬이는 어느새 잠이 들었다.
여전히 잠이 오지 않아서 예슬이의 잠자는 모습을 찬찬히 내려다본다. 뽀얗고 둥근 얼굴이 오늘따라 유난히 더 예쁘다. 이렇게 몇 밤만 자면 꽤 오랜 기간 얼굴을 볼 수가 없다. 벌써부터 서운함이 밀려온다. 
문득 지난번 전화 받았을 때가 또 생각이 난다. 
“너 누구지?” “누구긴, 할아버지가 좋아하는 예슬이잖아!”
이 생각 저 생각으로 오랫동안 몸을 뒤척였다. 그 사이에 잠든 예슬이의 얼굴을 몇 번이고 보고 또 내려다보곤 했다. 마음속으로는 계속 자장가를 중얼거린다. 부디 먼 곳에 가더라도 할아버지의 자장가를 꼭 기억하길 바라면서….

이춘만 장로 / 성락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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