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는 과연 자유(自由)로운 존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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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는 과연 자유(自由)로운 존재인가?
  • 주일뉴스
  • 승인 2017.04.14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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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과학자에게는 단지 연구를 위한 편의상의 구분일 수도 있지만, 인간의 본질을 묻는 근본적인 질문일 수도 있다. 과학은 오늘날 묻는다.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인간의 본질을 어떻게 보는 것이 합당한가? 

인간의 본연의 기능을 강화시킨다는 개념은 여러 가지로 매력적이다. 그것은 인간을 질병의 고통으로부터 자유롭게 한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노화로 인하여 포기해야 하는 많은 것을 더 이상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운동선수의 몸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도 운동능력을 비약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다는 뜻이 될 수도 있다. 그것은 극한의 환경에서도 더욱 탁월한 작전수행능력을 보이는 군인의 탄생을 의미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은 더욱 근본적으로는 인간이라는 종(種) 자체의 한계를 뛰어넘는 그 무엇으로의 진화를 의미할 수도 있다.

인간을 강화하겠다는 개념을 구현(具現)하려면 
인간 그 자체를 이해하는 것이 우선

그 의의(意義)가 무엇이든 간에 인간을 강화하겠다는 개념을 구현(具現)하기 위해서는 인간 그 자체를 이해하는 것이 우선이다. 인간을 어떤 존재로 이해할 것인가 하는 영역에서는 다양한 입장이 등장한다. 물론 그 입장들은 서로 완전히 배타적인 것은 아니다. 어느 한편의 입장에 더욱 무게 중심을 두고 있으면서도 다른 편의 입장을 동시에 받아들이기도 한다. 그것은 철학적인 개념으로는 완전히 분리되지만 실상은 대체로 단지 연구의 편의를 위한 구분에 불과하다. 
물론 이 다양한 입장이란 영적인 존재로 보는 입장과 육적인 존재로 보는 입장 같은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과학자들의 입장에서 인간의 이해란 철저히 관측 가능한 영역에 속한 것에 국한한다. 그들은 인간이란 보편적인 물리법칙만으로도 모든 정신작용을 설명 가능한 존재로 가정한다. 혹여 그렇지 않다고 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과학의 영역을 벗어나는 일이 돼버린다. 
그렇다면 다양한 입장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여러 견해가 있겠지만 ‘유전자 중심적 입장’과 ‘개체 중심적 입장’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인간을 유전자 중심적인 관점에서 이해하는 사람의 가장 대표적인 예가 「만들어진 신」(The God Delusion)으로 유명한 리처드 도킨스(Clinton Richard Dawkins)이다.
리처드 도킨스는 매우 독특한 견해를 가진 학자이다. 많은 사람이 그를 진화론자이자 무신론자 정도로만 알고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욱 그의 정체성을 규정지을 수 있는 단어를 꼽는다면 ‘유전자 결정론자’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의 견해에 의하면 지구상에 등장했던 모든 생물은 단지 유전자들이 자신의 생존과 진화를 위해 선택한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 각각의 생물 종과 각각의 개체는 유전자들을 실어 나르고 더욱 성공적으로 살아남도록 하며 더욱 널리 퍼뜨리기 위한 일종의 도구에 불과하다. 비유컨대 모든 생명체는 영화 속의 토니 스타크가 제작한 다양한 슈트에 지나지 않는다. 영화 속 토니의 슈트들이 매우 독특한 특성을 지니며 때로는 그 탁월함에 놀라게 되지만 본질상 토니 스타크의 생존을 보장하고 그의 일에 효율성을 더해주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지구상에 등장한 모든 생명체가 각각의 유전자들이 더 잘 살아남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도킨스의 견해이다.

모든 생명체가 유전자들의 도구에 불과하다??

도킨스의 입장을 극한까지 확대시킨다면 오늘날 인류의 기술이 이처럼 발달하여 마침내 스스로 유전적인 형질을 선택할 수 있게 된 것 역시 인간을 구성하는 유전자들이 더 잘 살아남고 진화하기 위해 선택한 방식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인간의 유전자는 이제 소위 자연적인 방식의 진화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여긴다. 인간의 유전자는 인간의 두뇌를 극한까지 발달시켜서 인간이 과학기술을 통해 스스로 진화를 선택할 수 있는 데에까지 이끈다. 인간은 스스로의 지혜로써 이 모든 일을 이루었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모든 것을 결정한 것은 유전자이다! 유전자가 인간을 지배한다! 유전자가 인간을 결정한다! 유전자가 당신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
이렇듯 도킨스의 견해는 사실 매우 극단적이다. 대개의 학자가 그처럼 특이한 주장을 하지는 않는다. 따지고 보면 도킨스의 견해는 자연과학이라기보다는 일종의 해석학의 영역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도킨스 자신은 신앙을 거절하고 자신을 가장 합리적인 과학자로 자부했지만, 이미 그의 견해는 과학의 영역을 넘어섰다. 그의 이론은 과학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철학에 가깝다. 그것은 오늘날 다양한 생명체가 빚어내는 다양한 삶의 형태에 대한 그의 독특한 해석이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그의 이론은 현상을 궁극적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일종의 신념체계에 가깝다. 그는 어떤 의미에서는 무신론이라는 종교를 신봉하는 열렬한 종교인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한편 유전자 중심적인 입장은 보다 현실적이다. 이 관점은 인간의 한계와 능력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인간 유전자의 염기 배열 순서를 읽고 그 의미를 이해하며, 그것을 조심스럽게 조작함으로써 유전자의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간을 강화하기 위해서 호르몬을 투여할 수도 있고 근섬유를 발달시킬 수도 있지만 가장 궁극적인 해결책은 유전정보를 교정(矯正)하는 것이라는 관점이다. 결국 이 입장은 유전자가 인간의 능력을 규정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이와는 반대로 유전자만으로는 인간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견해도 있다. ‘유전자 중심론’에 대항하는 ‘개체 중심론’이 그것이다. 이 주장을 가장 극명하게 나타내는 것이 바로 인간의 뇌이다. 완전히 동일한 유전자를 가진 일란성 쌍둥이라 할지라도 서로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라났을 때 뇌 기능은 서로 전혀 다르게 발현(發現)된다. 일란성 쌍둥이의 한쪽은 어려서부터 미국에서 뉴요커로 자라나고 다른 한쪽은 한국에서 성장한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그들의 언어와 사고방식부터 익숙한 음악과 선호하는 음식에 이르기까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성장할 것이다. 물론 그들의 행동과 습관이 서로 다른 문화적 환경에도 불구하고 놀라울 만큼 똑같은 지점을 공유하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그들은 전혀 다르게 발달한 뇌 구조를 갖게 될 것이다. 실제로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이와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이의 뇌는 뇌신경들의 연결방식이 전혀 다르다. 이렇듯 개체중심적인 입장에 있는 과학자들에게 유전자란 개체의 특성을 발현시킬 수 있는 일종의 가능성들이다. 이들에게도 유전자는 매우 중요하지만 유전자가 인간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물론 이런 구분은 사실 상당히 철학적이다. 실제로 연구를 진행하는 과학자들은 어느 한쪽 입장을 절대적으로 옹호하지 않는다. 그들은 늘 양측 입장을 부지중에 넘나든다. 실제로 뇌신경을 연구하는 학자가 유전자 염기서열에 관한 연구를 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유전정보가 동일하더라도 뇌신경의 발달은 거의 무한대의 경우의 수를 가지고 전혀 다르게 나타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전적 요인에 기인한 것으로 보이는 뇌질환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실제 학문의 영역에서 이러한 구분은 단지 연구를 진행하기 위한 편의상의 구분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럴지라도 나는 이러한 구분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오히려 신학적인 질문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떤 과학자에게는 단지 연구를 위한 편의상의 구분일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인간의 본질을 묻는 근본적인 질문일 수도 있다. 과학은 오늘날 묻는다.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인간의 본질을 어떻게 보는 것이 합당한가?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인간의 본질은 어떻게 봐야 옳은가? 

인간의 본질을 규정하는 영광의 보좌를 유전자에게 돌리는 입장은 신학적으로 보건대 일종의 결정론적 관점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 오늘 몇 시에 일어났는가? 당신은 아침에 강한 타입인가? 혹은 밤에 강한 타입인가? 당신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가? 당신은 운동을 좋아하는 편인가? 당신은 밖으로 다니면서 사람을 만나는 것이 좋은가? 혹은 집에서 홀로 있는 시간을 좋아하는가? 어쩌면 오늘의 삶은 당신이 원하는 대로 선택할 수 없는 삶이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당신은 가능한 모든 범위에서 당신이 원하는 선택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름 주체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사실은 당신의 유전자의 선택일 수도 있다. 당신의 아침이 무거운 것도 유전자 때문일 수 있다. 당신이 책을 붙드는 것보다 운동을 좋아하는 것 또한 이 때문일 수도 있다. 당신이 짭짜름하고 얼큰한 국물을 좋아하는 것도 유전자 때문일 수도 있다. 당신이 사람과 어울리기를 좋아하거나 반대로 번거로운 자리를 싫어하는 것 또한 같은 이유일 수 있다. 당신의 모든 성향이 이미 유전자 때문이라면 도대체 우리에게 자유의지란 것은 존재하는 것일까? 
과거 자유의지론은 당당히 신학의 한 분야로 자리했다. 그것은 구원의 선택과 관련된 고민이었으며 때로는 하나님이 만물을 다스리시는 경륜을 이해하기 위한 분야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자유의지론은 자연과학에게 그 자리를 내놓아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얼마나 자유로운 인간일까?

문상호 목사/기쁨가득한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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