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학이 그려놓은 시리도록 아름다운 수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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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학이 그려놓은 시리도록 아름다운 수채화
  • 주일뉴스
  • 승인 2017.04.14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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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장면은 아름다운 수채화 같다. 그 수채화의 아름다움은 내 추억에 고이 남아 아직도 그의 눈빛과 이름을 기억하게 했다. 참으로 순수한 마음이 오고갔던 그날의 기억이 조각조각 퍼즐처럼 맞춰져 떠오른다. 그 후 오랫동안 그 종이학은 나와 함께 했다. 아름다운 여고시절의 한 페이지는 항상 내 방에 자리 잡고 있었다. 

매서운 겨울이 끝이 났다. 여러 가지 꽃봉오리들이 자기의 모습을 단장하며 색깔을 다지는 소리가 들린다. 노란 민들레는 조그마한 모습으로, 산수유는 멋들어진 모습으로 봄을 노래한다.
날 좋은 어느 봄날, 서울 근교로 외출을 하였다. 민들레가 지천에 피어 있는 외진 카페를 찾았다. 카페 옆에는 예쁘게 꾸며놓은 꽃집이 있었다. 들어가려 문을 여니 바람소리에 예쁜 풍경소리가 났다. 가게 안을 살짝 들여다보니 풍경소리를 타고 여러 색깔의 종이학들이 떠다니고 있었다. 곱게 단장된 꽃가게와 고이 접은 종이학이 떠다니는 것을 보노라니 여고시절 추억이 떠올라 새삼 아련해진다.
내가 여고생이었을 때는 종이학을 접어 선물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그래서 당시에는 집집마다 종이학이 빼곡하게 담긴 예쁜 병들이 하나씩은 있었다. 어디에서 전해져 온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종이학을 접어 마음을 전하는 것은 순수한 사랑의 표현이었다.  
때 묻지 않은 여고 시절에는 낙엽이 굴러가는 소리만 들어도 까르르 웃음이 터졌다. 당시 친구들 집에 놀러 가면 남자친구에게 받은 종이학 유리병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어떤 아이는 몇 병씩 가지고 있기도 했다. 받지 못한 이들은 당연히 이성친구가 없었기에 종이학을 보며 부러워해야만 했다. 나도 당시에는 남학생을 따로 만난 적이 없어 꿈도 못 꾸는 처지였다. 
그러던 어느 주말, 친구가 남학생을 소개시켜주겠다며 연락이 왔다. 나는 수줍음도 많고 호기심도 많은 고1이었다. 집에는 도서관에 다녀오겠다는 핑계를 대고 덕수궁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물론 그때도 학생들끼리 자유로이 만나기도 했지만 흔한 일은 아니었기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나는 두근두근 떨리는 마음과 궁금증을 안고 친구와 함께 약속장소로 향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는 베레모를 쓴 모범생 느낌의 학생이었다. 교복을 입고 딱히 갈 곳이 마땅치 않았다. 우리는 덕수궁을 거닐며 잘 알지도 못하는 문학을 논하기도 하고 어려운 철학 이야기도 서로 나누며 오랫동안 시간을 보냈다. 
아쉽게도 그날 이후 우리는 만날 수 없었지만 친구를 통해 가끔 안부정도는 물으며 지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다른 친구를 통해 그 남학생에게서 연락이 왔다. 지난번과 같은 장소인 덕수궁에서 다시 보자는 약속을 했다. 
그와 다시 만나던 날, 그는 학이 가득 들어있는 유리병을 꼭 품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절로 미소가 번졌다. 그는 나와의 인연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접었다고 고백하며 종이학이 담긴 유리병을 내게 건넸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장면은 아름다운 수채화 같다. 그 수채화의 아름다움은 내 추억에 고이 남아 아직도 그의 눈빛과 이름을 기억하게 한다. 참으로 순수한 마음이 오고갔던 그날의 기억이 조각조각 퍼즐처럼 맞춰져 떠오른다. 그 후 오랫동안 그 종이학은 나와 함께 했다. 아름다운 여고시절의 한 페이지는 항상 내 방에 자리 잡고 있었다. 
예전엔 천 개의 학을 접으면 꿈이 이루어진다 하여 정성들여 접은 종이학을 사랑하는 사람이나 친한 친구에게 선물하기를 즐겼다. 어느 가수는 종이학을 소재로 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노랫말 중에 종이학 일천 개를 접으면 학이 된다는 구절이 기억난다.  
학은 자태가 고고하고 품위가 있다. 나는 그런 학이 참 좋다. 들은 바로 이 고상한 새는 5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오직 한 상대만을 사랑하다 죽는다고 한다. 학은 사랑하는 배필이 먼저 세상을 떠나도 죽을 때까지 혼자서 살아간다. 하지만 오래 버티지는 못하고 3년 남짓을 살다가 세상을 떠난다. 그래서 학은 사랑과 외로움을 동시에 상징하는 새이기도 하다. 
인간 세상에서는 죽을 것처럼 사랑하다 여러 조건에 치여 서로에게 상처주고 떠나가는 연인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러고 보면 학이 우리보다 낫다는 생각이 든다. 
문득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여고시절이 떠올라 그리움에 잠긴다. 꽃집에서 우연히 만난 종이학을 보며 나의 시리도록 고왔던 소녀 시절로 세월을 되돌리고만 싶다.  

이진이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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