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에는 진리(眞理)와 진실(眞實)이 승리하리라
상태바
최후에는 진리(眞理)와 진실(眞實)이 승리하리라
  • 주일뉴스
  • 승인 2017.04.07 15: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16년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 ‘가짜뉴스’가 보여준 파급력은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심지어 당시 페이스북에 가장 많이 공유된 기사 5개 중 4개가 가짜뉴스였다고 한다. 진실이 밝혀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페이스북 이용자들은 자극적인 기사를 접하자마자 ‘공유(share)’ 버튼을 눌렀고, 그 결과 이 가짜뉴스에 대한 공유나 댓글은 수십만 건에 달했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CNN의 짐 아코스타(Jim Acosta)를 지적하면서 “너는 가짜 뉴스야!”라고 하여 그의 질문에 귀 기울이는 것을 거부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트럼프 대통령은 ‘가짜 뉴스’의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에 대한 지지도와 신뢰도가 추락하고 있다.
이는 비단 미국만의 일이 아니다. 세계가 ‘가짜 뉴스’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독일 정부는 2017년 3월 가짜뉴스나 증오 표현을 방치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기업에 최대 600억 원의 벌금을 부과 하는 법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가짜뉴스(false news, fake news)는 교묘하게 조작된 ‘속임수 뉴스’를 뜻한다. 경찰은 이를 ‘실제 언론 보도처럼 보이도록 가공해 신뢰도를 높이는 방식으로 유포되는 정보’로 정의하고 있고, 한국언론진흥재단은 ‘정치·경제적 이익을 위해 의도적으로 언론 보도의 형식을 하고 유포된 거짓 정보’로 취급한다. 
영국의 텔레그래피에 따르면 가짜 뉴스에는 다섯 가지 유형이 있다고 한다. 의도적으로 사기성을 가진 뉴스, 미디어를 풍자적으로 하기 위한 가짜 뉴스, 대규모 사기를 위한 가짜 뉴스, 실제 사실에 대해 편파적인 가짜 뉴스, ‘진실’을 논쟁거리가 되게 하는 가짜 뉴스 등이 그것이다. 
인류의 역사를 보는 관점은 다양하지만 그 중 하나가 ‘진리와 거짓의 역사’이다. 생령(生靈)의 원조가 되는 아담부터 참과 거짓의 대조가 극명하게 드러났다. 그보다 더욱 거슬러 올라간다면 우주가 지어지기 전에도 참과 거짓은 존재했다. 우리는 거짓의 진실을 알지 못했지만 예수가 알게 하셨다. 곧 거짓의 아비인 마귀가 존재했다는 것이다. 지금도 거짓의 아비인 마귀가 여전히 이 세상에서 역사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도 거짓이 진리를 대적하고 세상 끝 날까지 그럴 것이다. 예수도 거짓에 의해 사형을 언도받아 무고하게 돌아가셨다. 그리고 죽으신 이후에도 그를 따르던 제자들이 그의 시체를 훔쳐갔다는 거짓 뉴스에 의해 부활이 왜곡 받고 있다. 하지만 마침내 거짓에 대한 진리의 승리로 세상은 끝날 것이다.  
진실이 감추어진 곳에는 온갖 억측이 난무한다. 또한 진실 공방은 서로에게 깊은 내상을 입힌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진실이 밝혀져도 그 깊게 남은 상처들은 쉽게 아물지 않는다. 진리와 거짓이 존재하는 곳에는 갈등과 분열이 있게 된다. 진실이 감추어진 곳에는 거짓도 진실의 탈을 쓰고, 그 거짓을 진실로 가장시키면서 자기 합리화를 계속하게 된다. 
교회에서도 참과 거짓으로 인해 서로 간에 반목과 분열을 계속하면 이는 진리 안에서 하나 되게 하려는 성령의 일을 거스르는 것이다. 진실 공방을 벌이며 서로 원수 삼는 일을 좋아할 자가 이간하는 자 마귀 밖에 더 있겠는가. 그러기에 모든 진실이 속히 명명백백(明明白白)하게 밝혀져야 한다. 그것이 서로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거짓으로 인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연자 맷돌을 목에 매고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낫다고 한 것처럼(마 18:7) 그 대가를 결단코 피할 수가 없게 될 것이다.  
거짓은 덮어지는 것이 아니라 진실로써 바로잡아야 한다. 신앙생활의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다. 성경은 교훈(teaching)만 줄 뿐 아니라 책망(rebuking)하고 바르게 하며(correcting) 또한 의로 교육(training in righteousness)한다. 그러므로 잘못된 교훈이나 행실에 대해서는 당연히 책망 받고 올바로 세워져야 한다. 잘못된 것은 무마하는 것이 아니라 책망해서 바로 잡아야 한다. 그것이 성도의 정당한 책임이다.  
그럼에도 진실을 밝히기 두려워하는 것은 어두움이 빛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거짓이 진실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마침내 하나님의 심판이 될 것이다. 거짓은 단순히 세상에서의 도덕이나 진실 게임을 넘어서 심판의 문제이다.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계 21:8). 
우리의 신앙생활은 영과 육의 모든 거짓된 것을 진리와 진실로써 대적하여 승리하는 것이다. 이 땅에서의 거짓된 것들은 마침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소멸될 것이고 오직 진리만이 하나님의 나라에서도 영원할 것이다.  

김종수 안수집사 / 본지 논설위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