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하늘 아래, 피 흘리기까지 별처럼 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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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하늘 아래, 피 흘리기까지 별처럼 살리라
  • 주일뉴스
  • 승인 2017.03.31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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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가 사랑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날 밤, 스치는 별은 바람에게 무슨 말을 섞어 보냈을까? 그 바람이 오늘 여기 있는 모든 이에게 불어와 어두워가는 하늘 아래 피를 흘리기까지 별처럼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이 느껴졌다.

윤동주 100년 일본 문학기행은 서울 시인협회의 시인들과 윤동주를 사랑하는 몇몇 문인단체가 함께 했다. 일행은 인천공항을 떠나 도쿄 하데스공항에 무사히 도착했다. 대기된 버스를 타고 설레는 맘으로 릿쿄 대학으로 향했다. ‘윤동주를 기념하는 릿쿄의 모임’을 20년간 이끌어 오신 야나기하라 야스코 할머니(71세)를 학교 정문에서 반갑게 만났다. 그녀는 1942년 윤동주가 학생으로 다녔던 식당, 교회, 문방구 등 그의 자취를 친절하게 안내해 줬다. 학교는 그때의 모습과 변함이 없고, 세월로 인해 나무가 고목(古木)이 되었을 뿐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우린 그때를 회상하며 학교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잔디밭에 앉아 수다를 떨었다. 또한 동양철학사 수업을 받았다는 1104호 강의실을 학생 동주처럼 노크해 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YMCA에서 열리는 윤동주 추모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다시 버스에 올랐다.
추모식에는 주일대사 등 윤동주를 사랑하는 일본인들이나 재일본인 등 100여 명이 모여 그의 행적, 시 세계, 그의 정신 등과 앞으로 책임감 있는 글을 써야 하는 우리의 자세에 대해 가슴이 뜨거워지는 강의를 들었다. 그리고 윤동주의 시나 자작시를 낭독, 낭송하며 그의 심정에 흠뻑 빠지는 시간을 가졌다. 저녁을 먹고 호텔방에 돌아와 부은 다리를 서로 주물러 줬다. 그렇게 첫 일본 여행의 긴장감을 풀었다.
이틀째 우리는 도쿄를 떠나 교토로 향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거리만큼 먼 거리라 버스 안에서 도시락을 먹고 휴게소를 잠시 들린 것을 제하고는 빠르게 달렸다. 교토에서 그의 행적을 하나라도 더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창밖의 풍경이 우리네 국도와 별반 다르지 않았는데 만년설 후지산을 발견하고서야 일본의 국도인 것이 실감났다. 
윤동주 시비(詩碑)가 있는 도시샤 대학에 들어서니 벌써 매화가 피어있었다. 도시샤 대학은 윤동주가 1942년 가을부터 1943년 여름방학을 맞을 때까지 다녔던 학교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특별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5년간이나 불허된 시비가 끈질긴 설득 끝에 설치되었다는 것과 2005년에는 스승인 정지용의 시비도 바로 옆에 세우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윤동주를 사랑하는 이가 이렇게 많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두 시비가 가까이 있어 외롭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니 떠나오는 서글픈 맘이 조금 위안을 얻었다. 
윤동주는 1943년 여름방학을 맞아 고향에 가려고 짐을 부친 상태에서 경찰에 체포됐다. 그런 줄도 모르고 그의 아버지는 고향 역에 짐 꾸러미가 도착하자 곧 아들이 올 것이라 여기고 역에서 열흘을 꼬박 기다렸다고 한다. 끝내 아들의 주검을 받아 든 아버지가 ‘시인 윤동주’라고 비문을 써 주었기에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시인 윤동주가 남아있을 수 있다는 말에 일행은 모두 숙연해졌다.
마지막 날 일정으로 윤동주의 마지막 사진을 찍었다는 우지 강의 아마 가세 구름다리에서 열리는 특별한 행사에 참여했다. 일찍 서두르느라 아침을 거른 우리는 편의점 삼각 김밥을 나눠 먹었다. 나이 지긋한 몇 어른은 처음 먹어본다며 희한한 밥이라며 놀랐고, 학생들은 그 모습을 의아해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구름다리에 모인 시인들은 추모기도를 한 후 하늘과 바람과 별을 사랑하는 맘을 담아 국화꽃을 우지 강에 꽃을 던졌다. 하지만 난 차마 던지지 못했다.
윤동주가 사랑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날 밤, 스치는 별은 바람에게 무슨 말을 섞어 보냈을까? 그 바람이 오늘 여기 있는 모든 이에게 불어와 어두워가는 하늘 아래 피를 흘리기까지 별처럼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이 느껴졌다. ‘어두울수록 별이 빛나듯 시인은 별처럼 살아야 한다’고 윤동주는 말하고 싶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하늘과 바람과 별의 시집을 목숨과 맞바꾼 것이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우지 강가를 걸었다. 
간사이공항으로 가는 기차를 타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한참 지나서 무지개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마치 윤동주처럼 서로 사랑하자는 약속을 알리는 듯했다. 그렇게 잊지 못할 여행은 무사히 마무리 되었다.
새삼 어려운 시절에 쓴 윤동주의 시가 현재의 마음에 와 닿는 것은 그 시절보다 마음이 더 궁핍해졌다는 것일까? 어두워가는 하늘 아래 모가지는 드리우지 못해도 땀방울이 핏방울이 맺히도록 힘써서 시를 써야하는 이유를 알았다.

임하초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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