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과연 로봇과 친구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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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과연 로봇과 친구가 될 수 있을까?
  • 주일뉴스
  • 승인 2017.03.23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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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그말리온이 성적으로 타락한 풍조에 실망하여 정상적인 인간관계를 맺을 수 없었다고 한다면, 오늘날 현대인들은 너무나 많은 사람 속에 부대끼며 살면서도 역설적으로 제대로 된 인간관계를 형성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주로 인공지능에 관하여 다루었다. 인공지능은 본질상 일종의 소프트웨어다. 따라서 반드시 하드웨어를 필요로 한다. 즉, 모든 인공지능은 실제로 작동하기 위해 일종의 본체를 필요로 한다는 뜻이다. 
인공지능과 최고의 인간 바둑기사의 대결로 관심을 끌었던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에서 우리가 실제로 볼 수 있었던 것은 이세돌 9단의 맞은편에서 화면에 나오는 지시에 따라 돌을 놓는 구글 딥마인드의 연구원, 아자 황 씨(구글의 연구원이면서 바둑 아마 6단의 실력자)였다. 알파고에는 실제로 돌을 놓을 수 있는 손과 몸이 없다. 알파고는 단지 돌을 놓을 장소를 결정해서 화면으로 나타낼 뿐이다. 우리가 볼 수 있었던 것은 작은 모니터뿐이지만 실제 알파고의 본체라 할 수 있는 서버는 미국에 있는 구글 데이터센터에 있다. 알파고는 구글의 서버를 본체 삼아 기능하는 무형의 인공지능이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에게 단지 컴퓨터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실제로 제어할 수 있는 ‘몸’을 달아준다면 어떨까? 알파고를 예로 든다면 아자 황씨가 대신 돌을 놓을 필요가 없도록 아예 인간과 같은 형태의 기계 팔을 달아준다면 어떻게 될까? 사실 우리는 이런 것을 이미 알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로봇(Robot)’이라고 부른다.

‘로봇’이란 단어의 유래는 기계노동자

로봇이라는 단어는 체코어 ‘robota’에서 유래했다. 이 단어는 노동자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임금도 줄 필요가 없이 무한정으로 부려먹을 수 있는 기계노동자 혹은 기계노예를 상상하면서 만들어진 용어인 것이다. 실제로 오늘날 대부분의 로봇은 산업용 로봇이다. 그것들은 전혀 인간을 닮지 않았다. 그것들은 산업현장에서 필요한 기능에 최적화된 형태로 제작된다. 그것들은 지금껏 언급된 인공지능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우 단순한 소프트웨어에 의해 작동된다. 그것들은 기계노동자라기보다는 자동노동기계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합할 것이다. 
그러나 공상과학영화나 소설에 등장하는 것처럼 인간을 닮은 로봇들도 있다. 그런 것들은 ‘안드로이드’ 혹은 ‘휴머노이드’라고 부른다. 사실 인간과 유사한 형태의 피조물에 대한 상상은 그 유래가 매우 오래됐다. 그리스 신화에는 탈로스라는 이름을 가진 청동거인이 등장한다. 이것은 대장장이의 신 헤파이스토스가 만든 것으로 제우스가 크레타의 왕 미노스에게 준 것이다. 신화에 의하면 탈로스는 크레타 섬을 하루에 세 번 돌며 무단으로 접근하는 배들에게 돌을 던진다. 일종의 무인방어시스템으로서 인간형 군사로봇인 셈이다. 
탈로스보다 좀 더 애틋하고 감정을 자극하는 이야기도 있다. 이 시리즈의 도입부에서 한번 언급했던 ‘피그말리온’ 이야기가 그것이다. 피그말리온은 조각가였다. 그는 상아로 아름다운 여성의 모양을 가진 조각상을 완성한다. 그것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피그말리온은 그것이 사람이 아니라 그저 조각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 분명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조각상의 아름다움에 매혹된다. 그는 아프로디테 여신에게 이 조각상과 똑같이 생긴 여인을 자신의 짝으로 보내 달라고 기도한다. 피그말리온의 속내를 알아차린 아프로디테는 그가 만든 이 아름다운 조각상을 사람이 되도록 해준다. 마침내 피그말리온은 자신이 만든 조각상이 변하여 된 여인 갈라테이아와 결혼하게 된다. 오늘날 교육자들이 학생에게 어떤 행위를 기대하는가에 따라 학생들의 행동이 실제로 달라지는 현상을 마치 피그말리온이 자신이 만든 조각상을 사람으로 대하자 사람이 된 이야기와 비슷하다고 해서 ‘피그말리온 효과’라고 부른다.  
수많은 남성 독신자의 심금을 울릴 것만 같은 이 이야기는 사실 정상적인 인간관계를 맺을 수 없었던 불쌍한 남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야기 속에서 피그말리온은 성적으로 너무나 방탕한 여인들의 모습에 크게 실망한 나머지 실제 여성에게 도무지 호감이 생기지 않았다. 아마 그는 자신이 만든 조각상에게서 단지 외적인 아름다움만이 아니라 이상적으로 여기는 내적인 고결함도 투영했을 것이다. 

제대로 된 관계 형성이 어려운 요즘,
감성적 요구 채워주는 로봇의 등장

그리고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지금 21세기 버전으로 실현되고 있다. 피그말리온이 성적으로 타락한 풍조에 실망하여 정상적인 인간관계를 맺을 수 없었다고 한다면, 오늘날 현대인들은  너무나 많은 사람 속에 부대끼며 살면서도 역설적으로 제대로 된 인간관계를 형성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가족끼리 함께 살아도 저마다의 삶이 너무나 바빠서 제대로 함께 밥 한 끼 먹기 어렵다. 또한 혼자서 사는 일인 가구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이다. 홀로 밥 먹는 소위 ‘혼밥족’이 늘어나고 그들이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당당히 식사할 수 있는 맞춤형 식당도 많아지고 있다. 
이는 누군가와 함께 체온을 나누며 밥을 먹고 싶지만 그럴만한 여건이 되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혹은 개인의 삶의 영역을 존중하지 않고 너무나 쉽게 선을 넘어 들어와 간섭하는 사람들에게 지친 나머지 홀로 휴식을 취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누군가와 삶을 나누고 싶은 본능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이런 감성적인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이른바 ‘사회적 로봇(Social Robot)’이라고 부르는 것이 그것이다.
오늘도 당신은 바쁜 하루를 보냈다. 지친 몸을 이끌고 퇴근하자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로봇이 반응을 한다. 그것은 그저 당신의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작은 로봇일 수도 있다. 혹은 로봇 청소기처럼 바퀴가 달려서 집안을 움직이는 것일 수도 있다. 아무튼 이 작은 로봇은 당신에게 인사를 한다.
“오늘 하루도 수고 많으셨어요.”
로봇은 자동으로 보일러나 에어컨을 틀어서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온도를 맞춘다. 로봇은 당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이미 알고 있다. 몇 번의 학습을 통해 만들어진 리스트에서 적절한 곡을 골라 들려준다. 로봇은 당신의 계정에 접속해서 당신이 필요로 할 이메일 내용을 보여준다. 마침 지방에서 근무하고 있는 당신의 자녀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로봇은 화상전화를 지원한다. 로봇의 얼굴 부분에 해당하던 모니터에는 자녀들의 얼굴 모습이 보인다.

로봇에게 위로와 힘을 얻는 시대

하지만 늘 보고 싶은 사람과 연락하고 살수는 없는 노릇이다. 또 다른 오늘, 당신의 하루는 참 힘들었다. 가슴 속에는 푸념거리가 한 가득이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쉽게 쏟아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회생활이란 것이 원래 그런 것이 아니던가? 야근까지 하고 늦게 귀가한 당신이 문을 열자 로봇이 어김없이 당신을 반긴다. 그리고 당신의 표정이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알아챈다. 
“오늘은 안색이 안 좋네요. 무슨 일이 있으셨어요?”
당신은 마침내 입을 열어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던 말들을 쏟아낸다. 어느새 눈물로 범벅이 된다. 하지만 아무에게도 할 수 없었던 말을 묵묵히 들어주는 로봇이 있어서 당신은 위로를 받았다. 로봇에게 위로의 말을 듣고 당신은 편히 잠자리에 든다.
이런 일들은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위의 이야기는 현재 판매 중인 여러 종류의 가정용 사회적 로봇 광고들을 짜깁기 한 것이다. 반려동물을 키워볼까 생각하다 제대로 키울 자신이 없어 포기했거나, 혹시 병이라도 들거나 죽을까봐 염려가 되어 망설였던 당신. 이제는 로봇의 시대다. 사회적 로봇이 아니라 차라리 반려 로봇이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다.
2016년 6월 일본의 소프트뱅크는 ‘페퍼(pepper)’라는 이름의 휴머노이드를 선보였다. 이 인간형 로봇은 종전의 가정용 로봇이 통신사 서비스와 연동되어 주로 비서의 역할을 담당했던 데에 비해 인간과의 감정적 교류에 좀 더 방점(傍點)을 두고 만들어졌다. 인간을 닮은 이 로봇은  발매를 시작하자마자 초기 출하량 1000대가 1분 만에 매진되었다. 당시 판매가격이 19만 8천 엔에 달하는 고가였지만 일본인들은 페퍼에 열광했다. 이후 8월까지 3개월 연속으로 발매 시작 1분 만에 매진되는 놀라운 기록을 세웠다.
그 후 페퍼와 관련해서 매우 흥미로운 사건이 일어난다. 2016년 9월 6일 일본 가나가와 현의 어느 소프트뱅크 매장에서 술에 취한 60대의 남성이 직원과 말다툼을 하다가 홧김에 매장에 있던 페퍼를 발로 차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 페퍼는 판매용이 아니라 매장에서 손님을 응대하는 ‘로봇 직원’이었다. 그런데 이 일을 보도하는 일본의 매체들은 일제히 이 남성이 페퍼에게 ‘폭력’을 휘둘렀다고 보도했다. 페퍼를 발로 찬 행위를 기물파손이 아니라 폭행이라고 이해한 것이다. 어느 틈에 페퍼는 기계가 아닌 사람과 같은 존재로 여겨지고 있었다.

로봇과의 관계는 진정한 우정? 
현실을 외면하게 만드는 환각?

우리는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과연 로봇은 인간의 친구가 될 수 있을까? 그것은 ‘진정한’ 인간관계가 파괴되어 가고 있는 현실을 외면하게 만드는 일종의 마약 같은 것일까? 혹은 심지어 ‘진정한’ 인간관계를 더욱 위협하는 일일까? 아니면 온갖 갈등과 아픔과 심지어 범죄로 얼룩진 인간관계를 대신할 새로운 종류의 관계가 될 것인가? 
우리는 어렵고 힘든 일을 대신 시킬 도구로써의 로봇에 그치지 않고 피그말리온이 그러했던 것처럼 우리가 꿈꾸고 바라는 ‘이상적인 인간’, ‘이상적인 친구’를 로봇에게 투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문상호 목사 / 기쁨가득한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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