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탑에 아로새겨진 기다림, 만남 그리고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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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탑에 아로새겨진 기다림, 만남 그리고 추억
  • 주일뉴스
  • 승인 2017.03.23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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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탑 이야기
최첨단 현대식 역사와 시계탑을 바라보고 있자니 오늘따라 오래전 소박하고 정겨운 그 광장 시계탑이 그립다. 문득 엄마가 보고 싶어 잰 걸음으로 걷는 단발머리 소녀와 엄마 곁을 떠나기가 아쉬워 눈물짓는 어린 소녀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봄이 어느새 성큼 다가왔다. 봄바람이 작은 회오리바람을 만들다가 사라진다. 친척 행사가 있어 청량리 시계탑에서 지인을 만나기로 하였다. 시계탑에 오랜만에 서있노라니 추억들이 새삼 영상이 되어 펼쳐진다. 
청량리역은 작고 초라했던 예전의 모습을 벗고 이제 대형 민자 역사로 탈바꿈했다. 하지만 그런 외형을 빼고 많은 사람이 만나는 장소라는 것은 예전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서울에서 동쪽으로 이어지는 경원선, 경춘선, 중앙선 등의 기점(起點) 역할을 한 청량리역, 이 역 앞에는 시계탑이 있다. 사람들은 이 시계탑에서 늘 누군가를 기다린다. 상경한 자식을 보러 시골에서 올라오는 노모를 기다리기도 하고, 멀리 떨어졌던 사랑하는 이를 다시 만나려고 기다리기도 한다. 
방학 때면 MT를 떠나는 대학생들과 여행을 가는 무리로 북적이기도 한다. 사이사이 부대에서 휴가 나온 군인들과 자신보다 더 큰 짐 꾸러미를 머리에 인 채 역을 나서는 할머니들이 뒤섞여 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 묘함은 청량리 시계탑만의 낭만으로 남아있다.   
청량리 시계탑은 학창 시절의 그리움과 기억의 공간이다. 지금도 눈을 감고 그곳을 떠올리면 중학생 소녀 시절이 아련히 떠오른다. 
그 당시 나는 경기도 가평에서 중학교를 다녔는데, 남자동생과 하숙을 하다 주말이 되면 서울에 있는 엄마에게 가곤 하였다. 완행열차를 타고 청량리역에 내려 버스를 갈아타고 세검정까지 서울 집을 찾아가던 일이 마치 어제 일처럼 눈에 선하다.
청량리역에 내리면 엄마가 너무 보고 싶고 가족이 그리워 역 앞 시계탑을 힐끔 쳐다보곤 줄행랑을 치듯 버스에 오르곤 하였다. 시계탑을 지나쳐 버스정류장으로 달려가던 그 길이 얼마나 설레고 가슴 뛰었는지 모른다. 지금도 시계탑을 보면 그때가 영화의 한 장면처럼 되살아난다. 하지만 주말이 지나 반대로 시골인 가평으로 돌아갈 때는 시계탑을 쳐다보지 않았다. 부모형제를 떠나 혼자 하숙집으로 돌아가는 소녀의 발걸음이 참으로 쓸쓸하고 허무해 눈물이 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성동구 왕십리 광장에도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온 시계탑이 하나 있다. 나도 이런 저런 일들로 그 근처를 자주 왕래했지만 막상 시계탑이 있는지는 모른 채 지냈다. 심지어 왕십리에 사는 사람도 잘 모른다고 할 정도로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평범한 시계탑이다. 그러나 얼마 전 우연히 이 시계탑의 사연을 접하게 되었다. 
세쓰 토마스 시계탑, 일명 왕십리 사랑의 시계탑으로 불리는 이 시계탑엔 특별한 사연이 숨겨져 있다. 이 시계탑은 왕십리 출신의 성공한 재미교포 사업가가 세상을 떠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 성동구에 기증한 것이다. 성동구 출신의 재미교포 사업가인 그는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사무치는 그리운 마음을 시계탑에 담아서 고향에 선물했다. 이곳에는 어머니를 위한 시 한 편이 새겨져 있다.
‘어머니, 이곳을 찾는 이들이 어머니의 사랑을 느끼고 친한 벗들이 우정을 나누며 연인들이 장래를 약속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우리들의 잊지 못할 고향 왕십리에 이 사랑의 시계탑을 선물합니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고마운 마음을 담은 사랑의 시계탑. 살아가며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이 지니는 특별한 의미를 다시 한 번 되돌아본다.
내가 기억하는 청량리역의 시계탑은 실연을 당하고 또는 시대와 불화하여 상처를 입고 응어리진 마음들을 토해 버려는 청춘들이 기타 하나 동전 몇 닢 챙겨 ‘자 떠나자 동해 바다로 삼등삼등 완행열차 기차를 타고’ 유행가 가사를 부르짖으며 만나던 곳이다. 그리고 해마다 봄철이면 강촌이나 대성리의 민박집을 향하여 대규모로 출정하던 젊은 MT 군단이 운집하던 곳이다. 또한 나라의 부름을 받고 강원도로 향하는 젊은이들이 이별하는 곳이자, 애인을 군대에 보내고 눈물짓는 젊은 여성들의 슬픔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던 곳이기도 하다. 우두커니 한국 현대사의 구석구석을 지켜봤던 청량리 역사는 수많은 사연과 슬픔을 안고서 이제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시계탑 앞에서 잠시 40년 전의 소녀시절을 떠올려본다. 최첨단 현대식 역사와 시계탑을 바라보고 있자니 오늘따라 오래전 소박하고 정겨운 그 광장 시계탑이 그립다. 문득 엄마가 보고 싶어 잰 걸음으로 걷는 단발머리 소녀와 엄마 곁을 떠나기가 아쉬워 눈물짓는 어린 소녀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훗날 소녀시절이 그리워지면 딸과 함께 청량리 시계탑을 찾아야겠다. 차 한 잔 나누며 소녀시절의 슬프고 아름다운 추억들을 나누고 싶다.

이진이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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