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들링’에서 온전히 하나되는 선교정신을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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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들링’에서 온전히 하나되는 선교정신을 배우다
  • 주일뉴스
  • 승인 2017.03.16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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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는 오직 교회에 맡긴 지상명령이다. 이것을 모르는 그리스도인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알면서도 선교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것은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교회관(敎會觀)을 잘못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써 머리되신 그리스도와 지체되어진 그리스도인으로 구성된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인 것이다. 이는 비유가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모든 혈통과 문화와 전통과 관습을 초월하여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엡 1:9-11).


이렇게 하나 되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창세전에 정하신 뜻이다. 또한 이렇게 하나가 될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 이는 하나님께서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바라시는 뜻이다.
물론 이 과정은 쉽지 않다. 그렇기에 성령으로 하나 되기를 힘써야 하는 것이다(엡 4:3).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 몸을 이룰 수 있고, 우리에게 맡기신 그리스도의 일을 할 수 있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허들링(huddling)이다. 영하 50도의 혹한에서 황제펭귄 무리는 한 몸이 되어 개체를 보전하여 다음 세대를 준비한다. 이 모습은 주님이 우리에게 하나 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말씀해주고 있는 듯하다.


남극을 터전으로 삼고 있는 모든 생물은 겨울이 되면 조금이라도 따뜻한 곳을 찾아 떠난다. 그러나 황제펭귄 무리는 거꾸로 남극대륙 더 깊은 곳으로 향한다. 본능이라는 내비게이션에 의존해 대륙 안쪽을 향해 묵묵히 행진하는 것이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더 춥고 외로운 곳으로 뒤뚱뒤뚱 100km를 행군한다. 남극대륙의 겨울은 필설로 형용할 수 없는 매서운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곳이다. 그럼에도 황제펭귄들은 새끼를 낳고, 키우기 위해 그 추위의 중심으로 향한다. 


짝을 정하고 알을 낳으면서 그들의 고난은 시작된다. 황제펭귄이 알을 낳아 부화를 하고 새끼를 키우는 곳은 바다로부터 먼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알을 낳은 엄마 펭귄은 새끼를 먹일 먹이를 구하기 위해 다시 먼 바다로 떠난다. 그러면 아빠펭귄들은 혹독한 추위와 싸우며 아무 것도 먹지 못한 채 알을 품는다. 


물론 펭귄은 추위에 잘 견딜 수 있도록 진화했다. 그러나 펭귄도 남극의 눈 폭풍은 도저히 홀로 견딜 수 없다. 알을 품은 아빠펭귄들은 서로의 체온을 의지해 추위를 견딘다. 이것이 황제펭귄만의 독특한 겨울나기, 바로 허들링이다. 형성된 허들링의 안쪽 온도는 바깥에 비해 무려 10도나 차이가 난다고 하니 남극대륙의 추위도 이겨내는 협동심의 위력이 놀랍기만 하다. 


이 허들링에는 또 하나 주목할 시스템이 있다. 펭귄들이 서로 모이다보면 자연스레 안쪽과 바깥쪽으로 나뉘게 된다. 그런데 시간에 따라 조금씩 움직이면서 바깥쪽 펭귄들이 안쪽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한다. 나만 아니면 된다는 이기심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훈훈한 모습이다. 그런 이타심이 있기에 황제펭귄은 모두가 떠난 남극의 겨울을 무사히 보낼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두 달 남짓 아빠펭귄들의 인고의 시간이 지나면 드디어 하나둘 알을 깨고 새끼들이 세상에 나오기 시작한다.


이때 우리는 또 다시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이미 아빠 펭귄들은 두 달간 아무것도 먹지 못해 눈에 띄게 야윈 상태다. 그런데 그들이 위벽에 모아두었던 음식을 토해내 새끼에게 먹인다. 이를 펭귄밀크라고 한다. 아빠펭귄이 새끼를 위해 남은 것을 다 토해내고 나면 체중이 10키로 이상 감소한다. 세상에 갓 나온 새끼들은 아직 돌아다닐 수 없다. 아빠 품을 벗어나면 몇 분 내에 바로 얼어 죽는다. 그렇기에 여전히 아빠의 두 다리 사이에 들어가 때때로 먹이만을 받아먹는다. 이러한 아빠 펭귄의 희생에 존경을 금할 수 없다. 그들의 이름이 황제펭귄인 것은 다만 그들의 외모에 따른 것이 아니리라.


우리는 그리스도이시며 만왕의 왕이신 주님의 이름을 소유한 자들이다. 바로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사망을 이기는 믿음을 가진 자들이다. 따라서 진정한 허들링은 우리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선교는 그렇게 너와 내가 없는 온전한 허들링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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