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없이 흐르는 생명과 사랑의 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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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없이 흐르는 생명과 사랑의 물결
  • 이해령
  • 승인 2017.02.17 10: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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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럭운전사
갑자기 측은한 생각이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운전석 앞에는 어린 딸과 아내 그리고 얌전하게 생긴 젊은 아빠의 가족사진이 보였다. 나는 다시 내 차로 가서 내가 먹으려고 샀던 귤을 트럭 운전석에 갖다 넣고 문을 닫았다.

서울 어디든 다 마찬가지겠지만 내가 사는 지역 일대도 언제나 주차할 공간이 부족해 밤마다 골목길이나 이면도로를 가릴 것 없이 차들이 줄을 선다. 간간이 뉴스에서 들려오는 소식 중에는 주차문제로 이웃 간에 벌어지는 섬뜩한 내용도 있어서 가뜩이나 삭막한 도시생활을 더욱 씁쓸하게 만든다. 
시대가 변하면서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워 졌는지 모르지만,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요즘은 모두가 바쁘고 모두가 힘겹다. 아이는 아이대로 청년은 청년대로 장년은 장년대로 그리고 노년은 노년대로 버거움과 바쁨과 고달픔 그리고 슬픔을 차례로 맞이하는 것이 지금 세상의 삶이다. 
모처럼 진료가 일찍 끝나서 오랜만에 친구들과 저녁식사를 같이 했다. 그런데 친구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인즉, 자기네 집 식구는 모두 바쁘고 모두 정신없이 살아간다는 것이다. 우스갯소리지만 제일 바쁜 사람이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들, 그 다음 바쁜 이가 자기 아내란다. 그러면서 가족이 얼굴 보기도 어렵다고 슬픈 농담을 던진다. 
삶은 원래 이렇게 바쁜 것일까? 아니면 바쁘게 살아야 오히려 마음이 편한 것일까? 마음에 있는 허전함을 바쁜 일과로 대신하는 것은 아닐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차를 몰아 집으로 돌아왔다. 집 근처에 도착하여 내 주차구역에 차를 주차하려는데 거대한 트럭이 버젓이 내 주차구역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지 않아도 주차할 곳이 없어서 여기저기 골목길에 주차를 했다가 작년에만도 대여섯 번 주차위반 경고장을 받았다. 그래서 올해부터는 어렵사리 주민 센터에서 한 구역을 분양받고 날마다 내 자리를 찾아 주차하면서 소유의 즐거움을 누리던 중이다. 
나는 차에서 내려 당장 트럭 유리창에 적힌 핸드폰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수화기 너머에서 자다 깬 듯한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힘겹게 들려왔다. “네, 트럭 좀 빼주세요.” 나는 처음부터 차갑게 말하였다. “아, 제가 지금 먼 곳에 있는데요….” “아니, 차를 남의 구역에 대 놓고 멀리 가버리시면 어떡해요!” “아, 아침에 주차할 데가 없어서…. 아… 어쩌지요? 너무 멀리 있어서 그러는데 다른 곳을 좀 찾아보시면 안 될까요?” 
나는 어이가 없었지만 그렇다고 별 뾰족한 수도 없어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 생각하자니 화가 났다. ‘아니, 남의 구역에 주차해 놓고 멀리 가버리다니!’ 괘씸한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래, 한마디 따끔하게 문자라도 날려주자’하고 핸드폰을 들고 트럭 근처로 다가 갔다. 트럭은 택배회사의 것이었다. 아마도 밤새 운전을 하고 아침에 퇴근하여 잠을 자는 모양이다. 트럭은 문도 잠겨있지 않았다. 
갑자기 측은한 생각이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운전석 앞에는 어린 딸과 아내 그리고 얌전하게 생긴 젊은 아빠의 가족사진이 보였다. 나는 다시 내 차로 가서 내가 먹으려고 샀던 귤을 트럭 운전석에 갖다 넣고 문을 닫았다. 그리고 내 차로 돌아와 잠시 생각에 빠졌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내 핸드폰이 울렸다. 아까 그 트럭 운전사였다. “사장님, 주차 공간 찾으셨어요?” “아니요, 왜요?” “아, 트럭 운전할 수 있으시면 운전석 팔걸이 밑에 키가 있는데 트럭을 앞쪽으로 좀 움직이시고 차를 대 보세요. 키는 있던 곳에 두시면 돼요.” 가만 보니 그의 말대로 트럭을 앞으로 조금만 이동시키면 두 대 모두 쉽게 해결 될 것 같았다. “네, 알았어요. 그렇게 해볼게요.” 나는 조심스럽게 트럭을 이동시키고 그 사이에 생긴 공간에 내 차를 주차했다. 그리고 다시 잠시 생각에 잠겼다. 
생각해보니 내 마음이 어느새 도시의 주차공간처럼 좁아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마음이 좁아진 것도 알지 못하고 지금껏 정처 없이 달려왔다. 주변 사람을 바라 볼 틈도 없이 말이다. 문득 트럭 운전석에서 본 사진이 떠올랐다. 사진 밑에는 ’예쁜 우리 딸‘이라고 적혀 있었다. 서로 보듬어 안고 찍은 그 사진이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하루하루 고단한 날을 보내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 깊은 잠에 빠진 트럭을 모는 아빠, 그리고 그를 기다리는 아내와 어린 딸. 많은 것을 가지진 못했어도 부족함 없이 행복해 보이는 세 식구의 사진 한 장이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리고 주위에  이런 가정이 꽤 많다고 생각하니 마음 한 쪽이 따듯해진다. 
복잡하고 빠르게만 흘러가는 세상, 그 아래 말없이 흐르는 생명과 사랑의 물결이 내 발목에 무릎에 차오르는 듯하다.

이해령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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