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복이 쌓인 눈 속에서 피어오른 따스한 호롱불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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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복이 쌓인 눈 속에서 피어오른 따스한 호롱불의 추억
  • 이진이
  • 승인 2017.02.10 12: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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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롱불

며칠 전부터 눈이 많이 내린다. 눈이 소복이 덮인 북한산 자락은 마치 한 점의 동양화가 병풍으로 둘러싸인 것 같다. 하얀 눈을 보니 기름을 넣고 불을 켜는 호롱을 선물 받았던 추억이 떠올랐다. 서랍을 열어보니 하얀 사기 호롱이 그대로 있다. 반가움과 함께 문득 어릴 적 어머니께서 떡이나 고구마 감자 등을 간식으로 주시면 호롱불 밑에서 호호 불며 맛있게 먹던 기억이 떠올라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전기가 드물던 옛날에는 집에서 호롱불을 켜고 공부를 했다. 그때는 그나마도 귀했던 시절이다. 요즘에야 스위치만 올리면 바로 환한 불이 켜지는 편리한 시대라지만, 예전에는 어둠이 찾아오면 아무리 공부가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눈 내린 풍경을 보고 호롱불에 관한 생각을 하고 있자니 형설지공(螢雪之功)에 얽힌 고사(古事)가 떠오른다. 
중국 진나라 때 차윤이라는 사람은 책을 너무 좋아했다. 낮엔 생계를 위해 일을 해야 했던 그는 밤에는 늦도록 열심히 책을 읽었다. 그러나 넉넉지 않은 살림에 등불에 채울 기름이 자주 떨어졌다. 고민 끝에 차윤은 자루에 한가득 반딧불을 담았다. 그날 밤부터 그는 반딧불이 담긴 자루를 등불 삼아 열심히 공부했고 훗날 이부상서(吏部尙書)자리에 올랐다. 
차윤이 살던 진나라에는 손강이라는 이도 살았다. 그 역시 책을 좋아했지만, 집이 가난하여 밤이 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밖을 서성이던 손강은 소록소록 내린 눈이 달빛에 반사되어 주변이 환해지는 걸 보고 눈빛에 비추어 책을 읽으며 공부를 했다. 추위와 싸워가며 열심히 공부한 결과 손강은 훗날 어사대부(御史大夫)라는 높은 벼슬까지 오른다.
불과 관련된 일화는 우리나라에도 전해진다. 조선시대 명필 한석봉은 학업에 매진하다 8년 만에 집에 돌아온다. 석봉의 어머니는 반가울 법도 하건만 바로 시험을 본다. 자기는 불을 끈 채 떡을 썰고 아들은 글을 쓰게 한 것이다. 불을 밝히자 어머니가 썬 떡의 모양은 일정한 반면, 석봉이 어둠 속에서 쓴 필체는 균형이 맞지 않았다. 어머니는 냉정하게 석봉을 다시 돌려보낸다. 결국 석봉은 2년을 더 공부하고서야 돌아올 수 있었다.  
밖은 아직도 눈이 내리고 있다.
나는 강원도 철원에서 초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당시만 해도 마을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호롱불을 켜고 생활했다. 가끔 호롱불 심지를 잘못 다뤄 불꽃이 빨갛게 타기도 했다. 그럴 때면 다음날 아침에 코 밑이 까맣게 그을려 있곤 했다. 학교에 다녀와 숙제를 하려고 호롱불 밑에 있다 보면 꾸벅꾸벅 졸음이 밀려왔다. 그러다 머리카락을 태워 고수머리를 만들었던 우스운 기억도 새록새록 떠오른다.
집 앞 북한산은 전체가 눈으로 뒤덮였다. 그 설경을 보고 있자니 아무리 봐도 ‘눈이 시리도록 아름답다’라는 말을 되뇌게 된다. 눈이 더디 녹는 추운 지대에 사는 것이 이럴 때는 좋기도 하다. 며칠은 거뜬히 투명한 하늘과 희고 흰 눈이 내 곁에 머무르며 눈의 나라를 선물할 것이다. 

이진이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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