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뛰어넘는 인공지능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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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뛰어넘는 인공지능이 온다
  • 문상호
  • 승인 2017.02.10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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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이 되면 우리 중 가장 똑똑하고 현명한 사람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의 지능을 가진 존재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 때 인공지능은 과연 인간에 대해 호의적일 것인가?

지난 두 편의 글에서는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인해 일자리가 없어지는 암울한 미래에 대해 이야기했다. 바로 지난 글의 말미에 필자는 이렇게 썼다. ‘인공지능이 무기를 들고 인간을 지배하리라던 영화 「터미네이터」의 상상력은 사실 너무 빈곤한 수준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정말로 이런 것을 염려하는 사람들이 있다. 영화를 너무 많이 본 음모론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세계적인 석학 중에는 여전히 인공지능이 인간을 말살하는 미래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세계적인 물리학자인 스티븐 호킹(Stephen William Hawking)은 인간의 진화 속도는 매우 느리지만 인공지능은 스스로를 발전시킬 수 있기 때문에 인공지능이 인간을 따라잡는 시기가 반드시 올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는 이런 일이 일어났을 때에 인공지능이 과연 인간에게 우호적일지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엘론 머스크(Elon Musk)는 영화 「아이언맨」의 주인공 캐릭터인 ‘토니 스타크’의 모델이 되는 인물이다. 그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의 미국 기업인이며 로켓 제조사인 스페이스 X, 전기자동차 제조업체인 테슬라모터스 등 여러 기업의 CEO이다. 그는 자신의 트위터에서 인공지능은 핵보다 위험하다고 경고한 바 있다. 

다양한 전문가들이 경고하는 인공지능의 위험성 

닉 보스트롬(Nick Bostrom)은 스웨덴 출신의 철학자이며 옥스퍼드 대학의 교수이기도 하다. 그는 2040년~2050년경이면 인간과 비슷한 지적능력을 가진 인공지능이 등장할 것으로 예측한다. 그리고 그런 일이 일어났을 때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이처럼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은 인간과 같은 혹은 인간을 초월하는 인공지능이 등장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예상하고 있으며, 그러한 미래를 두려운 눈으로 보고 있다. 심지어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인 빌 게이츠(William Henry Gates III)조차 인간 수준의 인공지능에 대해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물론 모든 전문가와 석학이 인공지능의 미래를 경고하는 것은 아니다. 구글의 에릭 슈밋(Eric Emerson Schmidt)회장은 인공지능의 발전이 가져올 미래를 두려워만 할 것이 아니라 제대로 준비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는 사람들이 기술의 발전을 두려워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언제나 이제껏 본적이 없는 새로운 종류의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그것을 두려워했고, 실제로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다. 그러나 어쨌든 결과적으로 인류는 새 기술을 사용해서 더욱 발전된 단계의 삶을 누릴 수 있었다. 그는 인공지능의 경우도 예외일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인공지능의 미래에 대해 낙관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인공지능과 함께 사는 세상을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현재의 교육에 대해 우려를 표한다. 지금 10대들은 인공지능과 경쟁하고 협력해야 하는 최초의 세대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받는 교육은 여전히 과거 세대들의 그것에 머물러있다. 50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지는 미래에 그들은 제대로 대처할 수 있을까? 

인공지능과 함께 사는 세상, 그 준비의 첫걸음은 교육

우리나라의 경우를 예로 들면 에릭 슈밋의 경고는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국영수 위주로 공부해서 수능 성적을 높이는 기존의 공부가 과연 얼마나 현실적인 미래 준비가 될 것인가? 컴퓨터가 이해할 수 있는 이진수 방식의 기계어가 아니라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고 실시간으로 적절한 반응을 하는 것은 인공지능 연구의 오랜 과제 중 하나였다. 비록 완전하지는 않지만 현재의 인공지능은 인간 언어의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에 반응할 수 있을 정도로 발달했다. 또한 각기 다른 문화권의 언어를 실시간으로 통역하는 것이 가능한 단계에 이르렀다고 한다. 영어를 포기한 학생에게는 희소식일지도 모르겠다. 앞으로는 머리 아프게 영단어를 외우지 않아도 외국인과 실시간으로 대화하는 데에 지장이 없는 미래가 펼쳐지는 것이다.
암기 과목은 말할 것도 없다. 왓슨과 같은 인공지능교사는 실시간으로 업데이트 되는 세계 각지의 다양한 지식을 언제나 친절하게 제공할 것이다. 심지어 그것들은 각기 다른 단편적인 정보를 모아서 의미 있는 지식으로 가공해 낸다. 탐구하고 창조할 수 없다면 더 이상 인공지능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가 오는 것이다.
인공지능은 단순 서비스직종은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상당한 전문성을 요구하는 직종까지 잠식해 들어갈 것이다. 방적기계를 때려 부수는 것만으로는 미래를 준비할 수 없었다는 것을 이미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러다이트 운동’은 노동자의 인권에 주목하고 저항을 긍정한다는 의의가 있다. 그러나 방적기계와 대규모 공장의 등장에도 노동자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단지 기계를 거부했기 때문이 아니라 보편교육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인공지능이 가져올 미래에 제대로 대비하는 첫걸음이 교육이어야 한다는 에릭 슈미트의 경고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인간에게 적대적인 인공지능은 지극히 인간중심적 개념

에릭 슈미트의 경고가 현실적이라고 해서 다른 석학의 염려가 비현실적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들은 좀 더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컴퓨터가 인간의 뇌보다 부족한 것이 있다면 복잡성일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컴퓨터는 듀얼 코어니 쿼드 코어니 해서 겨우 CPU 몇 개를 연결하는 수준에 그치지만 인간의 뇌는 1000억 개 이상의 신경세포(neuron)로 구성되어 있다. 이 신경세포들이 연결되는 방식의 수는 10조에서 100조에 달한다. 아직 인간의 기술은 이 정도로 회로들을 연결시킬 수 없다. 그러나 컴퓨터는 인간의 뇌를 모델로 삼아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게다가 개별 회로가 정보를 처리하는 속도는 인공지능이 압도적으로 빠르다. 머지않아 인간의 두뇌와 비슷한 수준의 성능을 가진 컴퓨터가 등장할지 모른다.
여기까지는 하드웨어적인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소프트웨어는 어떨까? 알파고가 바둑을 배운 방법을 생각해 보자. 오늘날 인공지능은 학습을 통해 스스로 정보를 축적하고 발전할 수 있다. 판후이 2단을 이겼던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꺾는 데에 불과 몇 개월 밖에 필요하지 않았다. 물론 생쥐 수준의 지능을 가진 인공지능이 동네 바보 형 수준의 인공지능으로 발전하는 데에는 이보다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동네 바보 형 수준의 인공지능은 단 하루면 아인슈타인 수준으로 발전할 수 있다. 그리고 다음 날이 되면 우리 중 가장 똑똑하고 현명한 사람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의 지능을 가진 존재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 날에는 그 격차가 기하급수적으로 더 벌어져 있을 것이다. 개미가 인간을 이해할 수 없는 것 이상으로 우리는 그 인공지능을 이해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 때 인공지능은 과연 인간에 대해 호의적일 것인가?
사실 ‘인간에게 적대적인 인공지능’이라는 개념은 지극히 인간중심적인 것이다. 인간은 스스로  매우 큰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에 어떤 미지의 존재를 상상할 때에 그 존재가 마치 ‘인간인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어쩌면 미래에 등장할 인공지능은 영화 「터미네이터」와는 달리 인간에 대해 그다지 적대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것이 인간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그 어떤 존재가 되어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인공지능은 과연 인간에게 우호적일까? 적대적일까? 

인간의 역사를 돌이켜 보건대, 우리는 그다지 적대적이지 않은 종(種)을 많이 멸종시켰다. 그것은 단순히 어떤 필요에 의한 것이었을 수도 있고, 혹은 전혀 의도하지 않은 결과일 수도 있다. 우리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인공지능은 우리에게 전혀 적대감이 없음에도 태연히 인간을 멸종시켜 버릴지 모른다. 혹은 그것은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인간이 전혀 원하지 않는 일을 강행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그것은 인간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주기 위해 강제적인 뇌수술을 진행하려 들지 모른다. 또는 인류를 보호하기 위해 분쟁을 일으킬 소지가 있는 인물을 선제적으로 대량학살하려 들 수도 있다. 나아가 인류를 더 나은 종으로 진화시키기 위해 강제로 인간을 더 이상 인간이 아닌 어떤 것으로 변화시키려 할지도 모른다. 
물론 이 모든 상상 역시 지극히 인간중심적이다. 무소불위의 권력과 힘을 가진 인간 독재자가 저지를 수 있는 상황을 가정한 소설 같은 이야기다. 
어쩌면 뜻밖에도 이 인공지능은 인간에게 전혀 무해할지도 모른다. 그것은 인간이 이해할 수도 없고 따라올 수도 없는 범우주적 문제를 고민하느라 그 존재조차 느낄 수 없게 행동할지도 모르겠다. 
구글의 기술자문이며 세계적인 미래학자인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은 인간과 같은 수준으로 사고하는 인공지능이 2045년까지는 등장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아무튼 우리는 머지않은 미래에 인류 최초로 우리 인간이 아닌 또 다른 ‘지능을 가진 존재’ 혹은 ‘인격적 존재’와 공존하는 시대에 돌입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것은 역설적으로 ‘인간’의 본질에 대한 물음에 더욱 천착할 수밖에 없음을 뜻한다. 

문상호 목사/ 기쁨가득한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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