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이기에 잘려나간 나의 옛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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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이기에 잘려나간 나의 옛 추억
  • 김의진
  • 승인 2017.01.26 02: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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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수리 나무
전기 톱날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스럽게 울렸다. 지나온 세월을 잘라내고 추억들이 잘려나가니 나는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심정이 되었다. 내 몸은 톱날 소리에 움츠러들고 마음은 허전하기 이를 데 없었다.  

80년대에 경의선 백마역에 내리면 시골 풍경 속에 민속 주막집이 있었다. 서울서 기차를 타고 풍경 좋은 야외로 나가 싸고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으므로 대학생도 자주 가는 명소였다. 막걸리 한잔에 시국을 논할 수 있고 통기타 가수들이 연주하는 아름다운 선율이 있는 곳이었다. 지금은 쉽게 갈 수 있는 곳이지만 그때만 해도 그곳을 가려면 버스나 기차를 몇 번씩 갈아타고서 긴 시간을 이동해야 했다. 여행 삼아 친구의 손을 잡고 기타 하나 들고 간 그곳에서 우리는 행복한 추억을 쌓고 돌아오곤 했다.
그 곳의 한 식당 주위로는 상수리나무가 울창하게 자라 가을이면 식당 쥔장은 수확한 도토리로 묵을 쑤어 손님상에 내었고 사람들은 이게 진짜 도토리묵이라고 감탄하며 맛있게 먹었다. 그러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내게는 긴 시간이 지났어도 그곳은 잊을 수 없는 장소이다. 수십 년 세월이 흘러 우연히 동창생 하나를 만났는데 그는 그때 그 자리에서 멋진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여름이면 녹음 짙은 상수리나무가 우거져 그늘을 만들고, 햇살 좋은 곳에서 반세기를 지나며 아름드리나무로 자라 아름다운 세상을 지켜본다. 그리고 어미 같은 마음으로 품어낸 열매를 맺는다. 
여전히 식당 주위에는 꽤 많은 상수리나무가 그 자리를 변함없이 지키고 있었다. 도토리가 떨어질 시기가 되면 지붕 위에서는 ‘툭 툭 투드득’ 소리가 요란스럽다. 
가만히 서서 상수리나무 군락이 빚어내는 풍경을 보고 있자니 여기저기서 떨어지는 도토리들. 하나 떨어지면 하나 줍고, 옆을 보면 또 줍고…. 나도 모르게 계속 주워야만 할 것 같아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줍다보니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파왔다. 도토리를 줍다 친구에게 농을 건넸다. 
“참 자연의 이치는 기묘하구나. 너 운동할 시간 없다고 한 두 개씩 떨구어 운동을 시켜주네….”  
나무는 다람쥐도 청솔모도 내 할미도 어미도 나도 먹여 살렸으나, 세상이 바뀌면서 비가 오면 질척인다고 흙바닥에는 시멘트가 덮이고 나무는 겨우 몸통만 내어주다가, 주변에 집들이 들어서고 큰 길을 내려 하니 사람들은 이 나무들이 거추장스러운지 한참을 올려다보며 고민하다 결국 시끄러운 소리 내며 잘라버렸다.
“길을 내고 주차장으로 쓰려면 아무래도 잘라야 하겠다”는 친구의 말이 청천벽력처럼 들렸다. 
“나무를 베면 도토리가 다 떨어질 거야. 그거나 좀 주워가라.”
전기 톱날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스럽게 울렸다. 지나온 세월을 잘라내고 추억들이 잘려나가니 나는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심정이 되었다. 나무는 잘려도 피 한 방울 나지 않는데 바라보는 내 몸이 톱날 소리마다 움츠러들고 내 맘이 왜 이토록 허전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몸이 동강나는 나무들을 바라보며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새 나무들이 남긴 마지막 도토리들을 부지런히 줍고 있는 나의 욕심이 부끄러워졌다. 

김의진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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