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닭 한 마리와 가슴 아린 지난날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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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닭 한 마리와 가슴 아린 지난날의 추억
  • 이해령
  • 승인 2017.01.13 16: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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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닭

진료를 마치고 허둥지둥 책가방을 챙겨 차에 싣고 서둘러 학교로 향했다. 한 시간 여를 운전하여 겨우 대림동에 도착하니 이미 해는 기울었고 수업시간까지는 십 여분 밖에 남지 않았다. 배는 고프고 식당에 가자니 시간은 모자라고 주변을 둘러보니 작은 트럭에서 팔고 있는 잘 구워진 통닭들이 꼬챙이에 꿰어진 채로 돌아가고 있었다. 세 마리에 만원이라니 도대체 닭을 어떻게 키우는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일단 한 마리를 사서 받아들고 다시 차로 돌아와 급한 대로 다리 한 짝을 뜯어 베어 물었다. 
밖에는 제법 굵은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차 안에는 고소한 통닭 냄새가 진동했다. 점차 굵어져가는 빗줄기를 바라보면서 닭다리를 뜯고 있자니 옛 생각이 하나 살며시 떠오른다. 89년, 그러니까 본과 2학년을 마치고 임상실습을 앞 둔 그 해 여름은 유난히도 길었다. 학교 수업은 제대로 이어지지 못했고 전국에서 일어난 학생 시위로 교정은 연일 최루탄 냄새가 매캐했다. 그날도 학교 교문 앞에서 극렬한 데모가 있었고 오후 해 질 무렵이 되어서는 길거리에 흩어진 수많은 전단지와 돌만 어지럽게 나뒹굴고 있었다. 
학생회 소속이던 나는 시간이 되는대로 땅에 어지러이 떨어진 것들을 줍다가 한 여학생과 마주쳤는데 하얀 얼굴에 커다란 눈망울이 어찌나 예뻐 보였던지 나는 잠시 멍하니 쳐다보았다. 이후로 나는 그녀가 보건행정학과 2학년에 재학 중임을 알게 되었고 우리 둘은 서로 이름을 교환하고 서로에게 끌리어 가파른 비탈길을 미끄러지듯 가까워졌다. 
지루한 장마가 끝도 없이 이어지던 여름날 밤, 퍼붓던 비가 그치자 문득 나는 그녀가 자취하고 있는 집 앞으로 달려가 그녀를 불러냈다. 모처럼 맑게 갠 밤하늘은 마치 가을하늘처럼 초롱초롱 별이 빛나고 있었고 밤공기는 제법 쌀쌀하기까지 했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말없이 마을을 한 바퀴 돌았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즈음 그녀는 내 팔에 자기 팔을 감고 “내가 너무 솔직하죠?”라고 하고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우리는 허기를 느껴 마침 눈에 띈 근처 통닭집에 들어가 마주 앉았다. 예전 같으면 학생들로 발 디딜 틈도 없었을 터이지만 기말고사가 끝나는 무렵이라 그런지 가게 안에는 우리 둘 뿐이었다. 
우리 둘은 마치 소꿉장난을 하듯 통닭 한 마리와 콜라를 시켜 놓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달콤한 시간을 보냈다. 조명은 은은하고 노랫소리는 감미로운데, 마음은 처음 느끼는 감정으로 쉴 새 없이 방망이질 쳤다.  
방학이 시작되면서 그녀는 부산으로 나는 서울로 흩어졌다. 우리는 편지를 주고받으며 나름의 순수했던 이상들을 역설했다. 그러한 이상들은 수십 년이 지난 오늘날 생각하면 그날의 맑은 밤하늘에 빛나던 별들 같은 것이었다. 이루어지기엔 너무도 멀리 있는 것들, 그러나 변함도 없고 변해서도 안 되는 영원한 것들이었다. 
나는 졸업을 했고 잠 잘 시간도 없는 고된 수련의 과정에 들어서면서 우린 다툼이 많아졌다. 그녀와의 사귐은 그러다가 끊어져 버렸다. 간간히 병원에서 나올 때마다 그녀를 찾아보려고 애를 썼지만 어디로 간 것인지 찾을 길이 없었다. 
몇 년의 시간이 더 흐른 후에 어렵게 닿은 전화통화로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가 결혼을 했다는 말을 전했다. 그녀는 나와 헤어진 후로 몇 해를 만나는 사람 없이 지내다가 얼마 전에 결혼을 했다고 하시면서 크게 한숨을 쉬셨다. 나는 그녀와 다툰 일을 크게 후회하였지만 다 지나간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나는 다시 그녀를 찾지 않았다. 그녀가 행복하기를 바랄 뿐 찾을 수도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행복한 삶을 살고 있지만 나는 그렇지 못하다는 자책을 여러 번 했다. 그것은 나에게 기회가 없어서가 아니라, 고슴도치처럼 내 몸에 도사리는 이기심과 욕심 때문에 잃어서는 안 될 내 앞의 소중한 존재들에게 상처와 슬픔을 주었다는 이유 때문이다. 
가족과 친구들과 수많은 소중한 인연 앞에 나는 과연 최선을 다 하는 사람이었는가를 생각해보니 전혀 그렇지 않은 증거들이 탄원하듯 드러나 견딜 수가 없었다. 내가 타고난 원죄가 이러한 것들인지 심한 자괴감이 밀려왔다. 나와 타인의 경계를 허물만한 따스한 마음은 어떻게 가질 수 있는 것인가. 이기심만 충족시키며 배부른 돼지로 살고 있는 것 같아 손에 들고 있는 닭다리가 민망스럽게 느껴졌다. 깜짝 놀라 시계를 보니 수업시간이 훌쩍 넘어버렸다. 제대로 되는 일이 없다고 생각하며 교실을 향해 뛰었다.

이해령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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