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석탄 산업은 국가 산업의 원동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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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석탄 산업은 국가 산업의 원동력
  • 이진이
  • 승인 2016.12.22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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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둘을 키우느라 피곤하다는 이유로 나는 연탄불을 자주 꺼뜨렸다. 그럴 때면 검은 연탄 한 장을 들고 주인집으로 가 불씨가 붙어있는 허연 연탄으로 바꿔오기 일쑤였다. 

어린 시절 연탄에 대한 추억이 가득하다. 찬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면 어느 집을 막론하고 월동준비의 기본이 연탄이었다. 창고 가득히 연탄을 쌓아 놓는 일은 매년 연례행사처럼 벌어졌다. 지금은 연로하신 나의 어머니 또한 겨울이 다가오면 김장을 하고 연탄을 사재어 놓는 일이 최대 관심사였다. 어머니는 워낙 준비성과 생활력이 강하셔서 다른 것은 몰라도 연탄과 김장 김치는 늘 광에 꽉 채워 놓으셨다. 
추운 겨울 시간 맞춰 연탄을 갈아야 하는 일은 여간 성가신 게 아니었다. 매캐한 연탄가스를 마시지 않으려고 코를 부여잡고 연탄을 갈았다. 자다가 연탄가스를 들이킨 날에는 김치국이나 동치미를 한 사발 마셨던 기억이 아련하다. 지금은 편리한 난방 기구에 버튼 하나면 덥혔다 식혔다를 마음대로 할 수가 있지만 그때는 연탄불을 꺼뜨리기라도 하면 번개탄을 피워 불을 살리기도 하고, 남에 집에 가서 밑불을 빌려와야 했다. 정말 고달픈 시절이었다. 
지금은 연탄이 서민의 대명사가 되고 말았지만 그 시절에는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 경제의 원동력, 국가 산업의 원동력이었다. 연탄을 언제부터 때게 되었나를 알아봤더니 서울석탄공사의 자료에 의하면 19세기 말 일본 큐슈 지방에서 주먹만 한 크기의 석탄에 구멍을 내 목탄 대신 사용한 것이 연탄의 효시라고 한다. 숭숭 구멍 뚫린 모양이 연꽃 열매를 닮았다 해서 연꽃 연탄이라고도 불렸다 한다. 
국내에서는 1920년대 후반, 일본인이 운영하는 상회에서 구공탄을 제조, 일본가정에 판매했다. 서울과 평양 등 대도시에는 일본식 연탄과 다른 벽돌 모양에 구멍이 2, 3개 나 있는 관제연탄이 공급되어 일부 한국인 가정에서도 사용했다. 연탄이 대중화된 건 해방 이후로, 1947년 우리 자본에 의해 최초로 설립된 대성산업이 그곳이다. 
가난과 부족함을 잘 모르고 자라는 요즘 아이들, 편리함과 신속함에 너무나 익숙해 조금도 기다리지 못하며 조급증만 커지는 요즘 아이들에게 교육적으로 제대로 가르쳐 줄 수 있는 게 뭐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그때 충청도 보령에 있는 석탄박물관을 방문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곳에서 연탄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가졌었기 때문이다. 
전기 히터, 에어컨, 가스 난방 등 너무나 익숙하고 편리한 것에 물들어 있는 아이들에게 과거 어머니, 아버지 시대에 연탄을 때며 어떻게 살았는지를 보여주고, 실제 연탄이 나오기까지 탄광에서 어떤 수고가 있었는지를 보여줄 수 있겠다 싶었던 것이다. 지하 수백 미터 속 갱도 내에서 채탄을 하던 광부 아저씨들의 피땀 어린 노력 덕분에 우리나라가 오늘날 이만큼의 산업발전을 이루었고, 그렇게 일한 것이 경제발전의 초석이 되어 우리나라가 현재에 이르게 되었음을 가르쳐 주면 좋은 듯싶다. 
현재도 도시와 농촌의 적잖은 가정에서 연탄을 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미 채탄이 끝나고 석탄 매장량이 고갈되어 대부분의 탄광이 폐쇄됐다. 이 폐광을 이용해 교육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곳이 바로 보령의 석탄박물관이다.
보령석탄박물관은 70~80년대 주 에너지원이며 근대산업 발전의 동력이었던 석탄산업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꾸며져 있어 해마다 10만여 명이 방문을 한다. 광물 표본류를 비롯한 측량, 탐사, 시추장비 등 4,000여 점과 탄광 갱도 모형, 광산촌 모형이 제작돼 있어 실제 탄광에 와 있는 듯한 체험을 할 수 있다.
지금 40대 이상의 연령대에서는 연탄에 대한 많은 추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렇다. 사계절 중 겨울을 가장 싫어하는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눈 쌓인 나뭇가지를 보는 것을 좋아하며, 차갑게 얼어버린 거리를 걸을 때 들을 수 있는 또각또각 구두 굽 소리를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연탄불이 자아내는 정서를 좋아한다. 
연탄에 대한 추억은 떠올리다 보면 가장 먼저 기억나는 것은 80년대 신혼생활을 할 때의 일이다. 당시 아궁이가 달랑 한 개 달린, 부엌도 없던 방에 우리 가족은 세 들어 살았다. 때를 맞춰 연탄을 갈아주어야 했는데 연탄불을 꺼뜨리면 집주인 아주머니에게 밑불을 빌려오곤 했다. 그때는 아기 두 명을 키우고 있어서 한 번 자리에 누우면 피곤한 몸을 일으키기가 힘들었다. 그런 이유로 연탄불을 자주 꺼뜨렸는데 방안이 서늘해질 때에야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검은 연탄 한 장을 들고 옆방에 가서 불씨가 붙어있는 허연 연탄으로 바꿔오기 일쑤였다. 그럴 때면, 알뜰살뜰한 아주머니는 현금이나 마찬가지인 새카만 새 연탄과 바꿔주는 게 기분 좋은지 입이 함지박만 해졌다. 그러면서도 연탄불을 좀처럼 꺼뜨리지 않는 자신의 세심함과 부지런함과 비교해 나의 게으름을 얄밉게 꼬집곤 했다. 
연탄불을 자주 꺼뜨리던 내 부엌 귀퉁이에는, 검은 숯덩이들과 함께 불씨를 쉽게 만들어 내는 위력의 번개탄이 늘 준비되어 있었다. 번개탄이 없으면 약통에 아스피린이 떨어진 것처럼 불안했다. 
당시에는 비 오는 날이나 추운 겨울에 잠을 자다가 방으로 스며들어온 연탄가스에 질식돼 그대로 혼수상태가 되어 병원에 실려 가는 사건이 비일비재하게 신문지면을 장식하곤 했다. 

이진이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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