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안 연중행사 김장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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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안 연중행사 김장하기
  • 김의진
  • 승인 2016.12.16 11: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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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남매는 어려서부터 엄마가 하시는 일을 곧잘 도와드렸다. 김장때도 마늘을 까고, 파도 까고, 배추 꼭지를 따서 나르는 잔심부름을 했다. 엄마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엄마 돕는 일을 무척 즐거워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김장을 했다. 부지런한 엄마는 팔순이 가까우시지만 우리 회사 옆 작은 텃밭에서 부지런히 왔다 갔다 하시며 배추 아흔 포기에 쪽파를 수확하셨다. 
매일 지하철을 타고 오셔서 여름 땡볕 아래 밭일을 하시니 더위를 드시지 않을까 늘 걱정이었다. 고된 밭일을 하시고 나면 끙끙거리며 앓는 소리를 내시는데, 나는 속상해서 이제 그만두고 텃밭에는 오지 마시라고 툴툴거렸다. 하지만 내 말은 아랑곳하지 않고 수시로 오시더니 오며가며 한 번씩 쳐다보면 어느 때는 상추와 고추를, 어느 때는 당근과 시금치를, 그리고 또 김장철이 되니 보이지 않던 배추와 무들이 보기 좋게 자라있었다. 
온 식구가 모여서 김장을 돕는다지만 하루 전날 배추를 절이고 다른 야채들을 다듬고 씻는 일은 모두 엄마 몫이다. 그걸 아는 까닭에 나는 김장을 형제들 각자가 하게 하라고 수차례 얘기했지만, 엄마의 마음은 본인이 고되고 힘들어도 다 같이 모여서 얼굴을 보며 김치도 버무리고 오순도순 밥도 같이 먹고 싶으신 게 분명하다. 
우리 사남매는 어려서부터 엄마가 하시는 일을 곧잘 도와드렸다. 설에는 다 같이 떡도 썰고 만두도 빚었다. 만두를 빚을 때는 각자 역할을 나누어 큰오빠와 막내는 속을 넣고, 둘째오빠와 나는 빈병으로 만두피를 밀었다. 김장때도 사남매는 마늘을 까고, 파도 까고, 배추 꼭지를 따서 나르는 잔심부름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가 시키지 않아도 우리 형제들은 그렇게 엄마 돕는 일이 즐거웠다. 
어려서부터 늘 해왔던 일이어서인지 지금도 모이면 만두를 척척 빚어내고 김장때도 오히려 오빠와 남동생이 더 열심을 낸다.
요즘 사람들은 뭐가 그리 바쁜지 서로 날짜 맞추기가 참 어렵다. 올해도 여러 번 전화 끝에 겨우 날짜를 잡았는데 하루 전날 큰오빠한테서 전화가 왔다. 
“우리 집은 참석하는데 아무래도 나 혼자 갈 것 같다. 집사람이 일 때문에 못 갈 것 같다고 하네.”
그 말에 나는 “일 할 사람이 와야지 큰오빠만 오면 무슨 소용이 있어? 일단 알겠어요. 제대로 참석하지 않는 집은 내년부턴 각자 김장하는 걸로 하시죠”라고 조금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런 내게 큰오빠는 구시렁댔고 은근히 화가 난 나도 “빈손으로 와서 버무리기만 하는 것도 힘드나” 하고 비아냥거렸다. 다행히 다음날 큰오빠 내외가 모두 참석해 올해 김장을 겨우 마쳤다.
큰오빠는 어려서부터 공부를 잘했고 장남으로서 부모의 기대를 한 몸에 받은 집안의 기둥이었다. 그런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여 좋은 직장에 취직해서 어린 동생이 셋이나 있는 집안 살림을 도맡았다. 
나이가 들면서 국내 불황 탓에 명예퇴직으로 꽤 많은 퇴직금을 받고 회사를 나왔으나 한 직장에서 전문직으로 수십 년을 근무하면서 세상물정을 너무 모른 탓인지 짧은 시간에 그 많은 돈을 다 없애고 무일푼이 되어버렸다. 신문에서나 보던 일이 큰오빠에게 일어났고 당시의 충격으로 우울증을 겪고 있는 건 아닌지, 지금은 너무 답답한 처지가 되고 말았다.
집안의 대소사에 참석해 장남으로서의 권위를 유지하려고 하지만 능력이 없는 큰오빠가 옹색하게 보일 뿐이다. 한편으론 화가 나서 차라리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다가도 큰오빠의 자리를 힘겹게 지키고 있는 모습을 보면 비록 동생들이 원하는 장남은 아닐지라도 언제나 빠지지 않고 참석해주는 게 고마웠다. 늘 나타나서 이런저런 잔소리를 하는 게 듣기 싫지만 그래도 큰오빠가 보이지 않으면 우리 집안은 썰렁해진다. 그간 그런 큰오빠에게 불평하며 속물처럼 굴었던 일이 문득 부끄러워진다. 

김의진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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