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 아주머니가 챙겨준 김치통이 불러일으킨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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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아주머니가 챙겨준 김치통이 불러일으킨 단상
  • 이해령
  • 승인 2016.12.02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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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통
들고 들어 온 봉지에는 식당 아주머니가 챙겨 준 김치통이 웃고 있는 듯 틈새로 삐죽 나와 있다. 바쁜 와중에서도 김치를 챙겨 준 아주머니가 고맙다. 

사람의 인생은 엄청 짧은 것 같은데도 왜 이렇게 복잡하고 힘겨운 일들이 많은 것인지 참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어릴 땐 몰랐는데 나이가 점점 들어가면서 이 일 저 일 신경 쓰이고 해결해야 할 문제도 산적해 있다. 아침부터 허둥대느라 바지를 두 개 입고 나온 적도 있다. 
직장도 하루 종일 복잡하다. 오전 내내 잡다한 업무를 처리하고 신문사에 칼럼까지 써 보내고 나니 점심때가 다 되었다. 대충 햄버거로 점심을 때우고 잠시 눈을 붙이자 오후 환자들이 기다린다고 깨운다. 수술이 맘에 안 든다느니 멍이 들었다느니, 왜 약값이 비싸냐는 등 정신없이 시달리다가 저녁이 되어 학교로 달려갔다. 시장기를 달래려고 국수집을 찾았는데 원래 있던 집은 온데간데 없고 수제비 집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런대로 수제비를 먹고 나오려다가 남은 김치가 아까워서 용기에 담아 오려는데 측은하게 보였는지 아주머니가 한 접시를 보태서 담아주셨다. 나는 단지 버리기 아까워서 그랬던 것인데 아마도 내가 궁색하게 보인 모양이다. 
가족들을 타지에 두고 혼자 생활을 하다 보니 은근히 남은 반찬들을 챙기게 된다. 냉장고에는 음식이 줄지 않아서인지 몇 달씩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게 많고 그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도 모를 봉지가 켜켜이 쟁여져 있다. 
어쩌다 가족을 만나러 가는 날이면 이미 한 달여 전부터 마음이 설렌다. 아직 아이들이 어린 탓인가. 막내는 내가 가는 날부터 다시 헤어지는 날까지 하루하루를 손으로 꼽으며 아쉬운 소리를 한다. 가는 날부터 오는 날까지 “이제 며칠 남았어?” 하고 묻는데 그때마다 맘이 쓰리고 아프다. “아빠가 돈 많이 벌면 그때는 같이 살 수 있을 거야”라고 대답은 하지만 사실 기약이 없는 노릇이다. 쌓아 놓은 빚은 줄어들지 않고 세상이 뒤숭숭해서인지 침체를 겪는 중이다. 
북한은 맨날 미사일을 쏘아대고 정치권은 맨날 치고 박는 통에 서민은 길 잃은 아이처럼 혼란 속에 던져졌다. 텔레비전에서는 잘 차려입은 앵커가 연일 흉흉한 소식을 전하고 라디오에서는 알아듣기도 힘든 노래들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한밤중이 되어서야 내 작은 방으로 귀가하면 그때부터 비로소 고요한 시간을 누릴 수 있다. 핸드폰과 텔레비전으로부터 멀어져야 겨우 내 생각들이 들어온다. 
늦은 밤 식탁에 앉아 하루를 생각하니 아침의 부산했던 순간으로부터 병원과 학교에서의 모든 일과가 참으로 번개처럼 지나간 듯하다는 생각이 들어 멍해졌다. 들고 들어 온 봉지에는 식당 아주머니가 챙겨 준 김치통이 웃고 있는 듯 틈새로 삐죽 나와 있다. 바쁜 와중에서도 김치를 챙겨 준 아주머니가 고맙다. 그는 내가 오히려 챙겨줘야 할 사람일지도 모르는데…. 
세상은 나만 바쁘고 정신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저마다 바쁘고 힘겨운 일이 있을 것이다. 아니, 나는 그나마 양반 축에 속하고 나보다 훨씬 더 바쁘고 고달픈 생활을 이어가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이런 생각에 이르자 문득 내 자신이 부끄럽고 죄송스럽기 시작했다. 부모님 은택으로 대학까지 다니고 그나마 누리게 된 지금의 상황들은 내가 그동안 날로 먹고 있던 것이 아닌가, 은근히 두려움이 몰려왔다. 그렇게 공부한 것을 우려먹으면서 별 시련도 없이 온실 속 화초처럼 살아오지 않았는가. 그리고 그런 태도로 살아온 날들에 대해 언젠가는 반드시 책임을 물어올 것이라는 생각이 무겁게 나를 짓눌렀다. 
이 상황을 조금이라도 만회하는 일은 언젠가 준비가 되는대로 모든 빚을 갚아나가는 것이라 생각했다. 은행 부채가 아니라 삶의 빚…. 그것은 보이지 않아도 나에게 주어진 것이며 내가 감당하고 그 소출에 대해 청구를 받는 것이다. 
많이 주어진 자는 많은 청구를 받게 될 것이다. 청구를 다 응하지 못하면 이 삶에서보다도 더 힘든 상황에서 몸으로 때워야만 하는 형국이 벌어질 것만 같아 맘이 오싹 움츠러든다. 겨울 문턱이 새삼 더 싸늘한 밤이다. 

이해령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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