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빠진 연인이 고난을 극복하고 결실하는 과정을 그려낸 아름다운 서정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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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진 연인이 고난을 극복하고 결실하는 과정을 그려낸 아름다운 서정시
  • 주일신문
  • 승인 2015.01.04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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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雅歌)를 읽기 시작하면서

서사시가 아닌 서정시에 가깝지만, 그럼에도 본문은 사랑에 빠진 
연인이 고난을 극복하고 결실을 맺는 내용이 분명히 그려진다.
사랑에 빠져 연인의 사랑을 갈구하는 여인의 고백이 등장하다가 
여인의 아름다움에 찬탄하는 남성 화자의 노래가 뒤따른다.

사사기와 욥기에 이어 세 번째 성경 읽기를 시작한다. 이번에는 아가(雅歌)이다. 표현이 좀 이상하지만, 이를 테면 비주류에 속한 성경 읽기인 셈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사사기와 욥기 읽기가 그러했듯이, 이 글 역시 권위 있는 주석과는 거리가 멀다. 필자의 아가 읽기에 동의하지 않는 독자가 있을지도 모른다. 필자는 이 글이 아가를 올바르게 읽는 방법이라고 주장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다.
성경 본문은 항상 우리의 해석보다 크고 넓다. 성경은 참으로 풍요로운 바다와 같아서 그 안에 숨겨진 보화는 얼마든지 퍼내어도 마르지 않는 샘물과도 같다. 우리가 어떻게 읽고 무엇을 발견하든지, 그보다 더 풍성하고 많은 것이 담겨 있는 것이 성경이다. 부끄러운 글이지만 성경의 풍성함에 기대어 용기를 내어보려 한다. 이 글은 성경을 다시금 읽어 나가는 노력이다. 독자 여러분도 함께 성경을 새롭게 읽어 나가는 가운데에 이전에는 무심코 넘겼던 것을 새롭게 만나는 기쁨을 느끼는 기회가 된다면 참으로 감사할 뿐이다.

 아가(雅歌)는 어떤 글인가
 
아가는 어떤 글인가? 한글 개역성경은 제목을 ‘아가(雅歌)’라고 번역하였다. 가장 단순하게 번역한다면 ‘아름다운 노래’ 정도가 될 터이다. 하지만 향악(鄕樂)에 대하여 아악(雅樂)이 있던 사실을 참고한다면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궁정의 노래’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마도 후자로 보는 것이 좀 더 나은 이해일 것 같다. 아가 1장 1절은 이 글을 솔로몬 왕과 연결시키기 때문이다. 
영어성경에서는 대개 ‘Song of songs’라는 제목을 사용하는 것 같다. ‘노래 중의 노래’라고 직역할 수 있지만, ‘가장 뛰어난 노래’, ‘최고의 노래’라고 해석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만군의 주’를 ‘Lord of lords’로 표현하거나 지성소를 ‘Holy of holies’로 표현하는 것과 같은 표현법이다. 
아무튼 영어성경이든 한글성경이든 제목부터 본문의 장르를 규정짓는 셈이다. 본문은 시다. 그것도 장엄한 서사시가 아니라, 사랑을 노래하는 아름다운 서정시다. 자, 그래서 본문에 접근하는 것은 더욱 즐거운 일이면서, 더욱 조심스런 일이 된다. 고교 수험생이 듣는 학원 강의처럼 아름다운 서정시를 조각조각 갈라내어 처참하게 분해하고 분석하는 것은 제대로 된 시 읽기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더구나 그것이 ‘노래 중의 노래’, ‘가장 아름다운 노래’임에랴! 사실 아가를 읽는 최고의 방법은 큰 소리로 낭독하는 것일 게다. 사실 본문을 분석하면서 읽는 것은 가장 적합하지 못한 읽기가 될 것이다. 
그래서 더욱 조심스럽다. 이 아름다운 시어들에 접촉하는 것은 그래서 두렵고 떨린 일이다. 그렇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본문을 읽어 나가려는 독자들을 풍성히 품어 주고, 얼마든지 보화를 내어 주는 성경의 자애로움에 이번에도 기댈 수밖에 없으리라.
 
저자와 연대
 
아가의 저자는 누구인가? 일단 1장 1절은 본문을 솔로몬과 연결시킨다. 한글 성경은 ‘솔로몬의 아가’라고 번역했기 때문에 저자로서 솔로몬을 떠올리게 하지만, 사실 본문은 ‘솔로몬에게 헌정하는 노래’라든지 ‘솔로몬에 관한 노래’라고 읽을 수도 있다. 한글 성경의 번역은 솔로몬의 저작권을 주장한다기보다는 가장 간단한 번역을 선택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일단 아가에 등장하는 주된 화자는 술람미 여인이다. 그는 작중 여자 주인공이면서 독자들에게 가장 뚜렷이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인물이다. 그렇게 본다면 아가는 여성 시인이 저자일지도 모른다. 술람미 여인의 이야기가 시인 본인의 실제 체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든, 혹은 완전히 새로운 창작이든, 술람미 여인은 시인의 내면을 형상화한 인물일 게다.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저자가 여성일 것이라는 견해는 확실히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모두 추측일 뿐이다. 사미인곡(思美人曲)이라는 가사가 있다. 1585년에 송강 정철이 쓴 것이다. 이별한 남편을 그리워하는 여성이 쓴 글처럼 되어 있지만, 실은 군왕을 사모하는 마음을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많은 사람이 해석하듯, 아가의 사랑 이야기가 이스라엘과 하나님, 혹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보여주는 일종의 비유적 표현이라면 본문의 저자가 반드시 여성일 필요는 없다. 사실 아가의 저자가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우리는 전혀 아는 것이 없다고 보는 것이 정직할 것이다. 

 

이 아름다운 시의 저자가 누구인가 뿐만 아니라, 지어진 때가 언제인가에 대해서도 우리는 전혀 아는 것이 없다. 솔로몬의 아가라는 표현을 저자에 관한 것으로 이해한다면 본문은  솔로몬 당대의 것이 될 것이다. 솔로몬에게 헌정된 노래이거나, 솔로몬에 관한 노래라고 읽는다면 솔로몬 이후의 일일 것이다. 
아가의 내용을 이해하는 것에도 어려움이 있다. 아가는 한 편의 노래인가, 혹은 여러 편의 시가의 묶음집인가? 일단 아가는 전체적으로 통일성을 가진 것은 분명하다. 비록 그것이 이야기가 아니라 시가이고, 더욱이 서사시가 아닌 서정시에 가깝지만, 그럼에도 본문은 사랑에 빠진 연인들이 고난을 극복하고 결실을 맺는 내용이 분명히 그려진다.
그런데 멀리서 보면 분명한 전체적 통일성이 있는 이야기이지만, 좀 더 가까이 접근해서 읽어 가다 보면, 좀처럼 매끄럽게 읽히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통일된 한편의 시가로서 읽기에는 너무 많은 마디와 균열이 발견된다. 
예를 들어 보자. 1장 2절부터 4절까지는 사랑에 빠져 연인의 사랑을 갈구하는 여인의 고백이 등장한다. 9절부터는 여인의 아름다움에 찬탄하는 남성 화자의 노래가 뒤따른다. 문제는 5절부터 8절에 있다. 5절과 6절은 이 여인에게 문제가 있음을 밝히고 있다. 그녀의 외모가 검다는 것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그녀가 포도원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포도원은 그녀의 몸에 관한 은유인 것 같다. 아마도 처녀로서 지켜야 할 정절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6절을 어떻게 읽든지 이들 커플의 사랑이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복선처럼 보인다. 
7절과 8절에서는 그녀가 연인의 행방을 알지 못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녀는 사랑하는 임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 방황한다. 그런데 9절에서는 곧장 그녀의 아름다움과 사랑을 찬탄하는 남성 화자의 목소리가 등장한다. 8절에서는 분명 행방을 찾을 수 없었던 그 남자는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9절에서는 사랑의 밀어를 속삭인다. 이런 남성 화자의 목소리는 8절까지의 이야기의 흐름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이런 균열로 인해 이 글이 한 편의 완성된 시가 아니라, 여러 편의 시의 모음집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렇게 본다면 아가는 시편처럼 여러 시의 묶음집일 것이다. 그러나 시편이 여러 시를 나열해 놓은 데 비해, 아가는 적어도 시를 묶어서 한 편처럼 보이게끔 편집하는 과정을 거쳤다. 아가를 아가이게 하는 것은 재료가 된 시가 아니라 의도된 편집과정일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재료가 된 각각의 시의 저자가 아니라, 현재의 형태로 편집한 이에게 저자의 자격을 돌리는 것이 마땅한 것 같다. 

문상호 목사 / 기쁨가득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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