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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어박고 싶은 사람들 / 윤준호 목사(서울성락교회) (2006.6.4)
juilnews | 승인 2009.08.04 03:57
쥐어박고 싶은 사람들


말 한 마디로 매를 버는 사람

망언의 시대다. 온갖 망언이 난무한다.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사람까지도 살려두어야 하는 시대라는 것이 그나마 다행인 줄 알아야 할 텐데. 망언이라면 또 남들에게 크게 뒤지지 않는 어떤 사람이 있다. 중학교 때의 일이란다. 선생님이 자기 집의 가훈을 써내라고 하시자, 그 즉석에서 떠오르는 것을 써냈다. “꼴값을 하자”, 당연히 선생님께 얻어터졌다. “장난하냐?”

10여년 후 성경을 배우면서 그는 자신의 영적 통찰력에 내심 놀랐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가장 영광스러운 꼴로 지어졌으므로, 그 형상다움을 드러내며 살아야 한다는 것 아닌가!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꼴값을 하며 사는 것이 가장 하나님 뜻대로 사는 것이요, 인간으로서 가장 잘 사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꼴값을 해야 한다.

그 사람은 또한 반찬 중에 생선이나 꽃게탕이 나오면 손도 대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런 것을 그가 싫어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한다는 소리가 이렇다.

“저는 장남 장손 외아들이라서, 이런 것을 직접 발라먹지 않습니다. 숟가락만 딱 들고 있으면 할머니가 알아서 다  발라서 숟가락에 얹어주시니까요”사람들의 야유가 쏟아졌음은 물론이다. 그나마 돌팔매가 날아들지 않은 것만도 천만다행이다.

오락 중에 최고의 오락은 ‘공부’ 라는 망언도 그의 목숨을 위태롭게 했던 대표적인 사례다.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 라는 책으로 수많은 사람을 기죽이고 부끄럽게 만들었던 어떤 노동자의 책만큼이나 사람들을 열 받게 한 망언이다.

이 세  건의 망언이 한 사람에게서 나왔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그 사람 의 이름이 YJH라던가?

핸드폰이 두 번째로 울리는 사람

머리가 나쁘거나 마음이 악하거나 한 사람들은 오히려 이해가 된다. 머리가 나빠서 도저히 못하겠다는 사람을 누가 탓할 수 있겠는가? 워낙 마음이 삐뚤어지고 범사에 악을 도모하기만 하는 사람을 또 어쩌겠는가? 피하는 수밖에 더 있겠는가?

그런데 머리도 있고, 그렇게 악을 행하는 자도 아니면서, 결과적으로 나쁜일에만  많이 연루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생각없이 사는 사람들이다. 머리는 있는데 생각은 없다. 악하지는 않는데 결과적으로는 악은 행한다. 이런 사람들,  정말 쥐어박고 싶다.

그 한 예가 두 번째로 핸드폰 소리가 울리게 하는 사람이다. 모든사람이 다 바쁘고 경황이 없기 때문에 공공장소 또는 다중운집장소에 들어갈 땐, 핸드폰을 다 끄고 들어간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하다. 그러다 보니, 예배나 장례같이 가장 조용하고 엄숙한 순간에 “삐리리~” “와이리 좋노!와이리좋노!”,  “전화 받어, 뭐해?” 등등 온갖 기기묘묘한 핸드폰 소리가 울린다. 그래도 우리 사회가 예전보다는 조금 성숙해져서 다른 사람들이 그 쪽을 돌아보며 힐난하고 눈을 부라리고 성토하는 분위기가 거의 없어졌다.  ‘ 그럴 수 있지. 그렇지만 이제는 끄겠지.’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다. 그렇게 정적을 깨고 첫 번째 핸드폰이 울렸으면 나머지 사람들은 알아서 자기 핸드폰을 단속할 것으로 기대를 하건만, 잠시 후에 또 다른 곡조의 “삐리리” 가 터진다. 정말 생각 없이 사는 사람이다. 진짜 쥐어박고 싶다. 도대체 뭘 생각하며 사는 사람인가? 생각을 어디다 처박아 두고  사는 사람인가?

장애인 주차구역 뒤에 주차하는 사람

쥐어박고 싶은 사람의 또 다른  유형은 주차장에서 장애인 전용석 바로 뒤의 통로에 소위 통로주차 또는 평행주차를 해놓는 사람이다. 자기 딴에는 장애인 주차석을 비워놓고 거기는 차를 대지 않겠다는 생각에 그곳을 피하여 그 뒤쪽 통로에 차를 댄 것이다.

그 결과는 어떤가? 그렇지 않아도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에게 남의 차까지 밀라는 말인가? 생각 없이 평소에 하던 대로 타성을 좇은 자요, 결과적으로 악한 일을 행한 사람이다. 어째 이렇게 생각 없이 살면서도 무사할까?  왕창 쥐어박아서라도 생각하는 사람으로 만들고 싶다.

교회 앞 찻길에다 교인을 내려주는 사람도 그에 못지않다. 최대의 배려를 한답시고 교회 바로 정면에 차를 세우고 사람을 내리게 하면, 그 뒤에 따라오던 차는 깜짝 놀라 급정거하게 되고, 그러면 볼 것도 없이 교회 욕을 한다. 심지어 그 동네에 사는 불신자가 교회 앞에 내려도 으레 교인이 아무데나 차를 세워서 자기를 놀라게 했다며 더욱 더 욕한다. 결국 거기다 사랑하는 교인을 내려놓거나 사랑하는 목회자를 내려놓는 것은, 그 내리는 사람을 대놓고 욕먹도록 무대 위에 올려놓는 것이다. 어찌 이렇게 사는가? 생각하며 살면 어디가 덧나나? 이렇게 생각 없이 사는 사람들, 정말 쥐어박고 싶다.

영감과 예의를 가장 잘 갖춰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먼저 신앙과 생활의 본을 보여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쥐어 박히지 말고 살자. 조금만 더 생각하며 살자.

juil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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