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무언의 천지만물-366] 이삭의 재건(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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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무언의 천지만물-366] 이삭의 재건(I)
  • 주일뉴스
  • 승인 2020.12.17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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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약속을 꼭 지키신다. 인간은 잊을지라도 하나님은 반드시 기억하시고 완성하신다. 이스라엘 민족은 율법을 암송하며 매주 안식일을 지킨다. 지나치게 종교적으로 보일지라도 그렇게 매달리는 것은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늘 보응과 보상을 통해 당신의 존재를 각인시키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항상 미리 말씀하셨고, 말씀 따라 역사하셨다. 그게 성경이 보여주는 일관된 메시지이다.

이스라엘은 창세기 32장에 처음 나온다. 야곱이 천사와 씨름하고서 받은 이름이다.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28) 사람들과 싸워서 이긴 것은 형 에서, 삼촌 라반과 아버지를 말하는 것이리라. 무엇보다 하나님과 싸워서 이겼다는 말이 오뚝이 도드라진다.

이렇게 야곱이 받은 이름을 후손인 열두 아들이 이어받아 이스라엘 민족이라 불렸다. 또 현재 사는 땅 또한, 이스라엘로 부른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했던 가나안 땅이 현재 이스라엘 땅이라 봐도 무방하다. 하나님은 천대에 명하신 말씀을 영원히 기억하시고 지키시는 분임을 확인하게 된다. 그래서 말씀을 언약’(言約)이라고 한다.

시무언이 인용한 시편 1059~10절은 이렇다. “이것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이며 이삭에게 하신 맹세며 야곱에게 세우신 율례 곧 이스라엘에게 하신 영영한 언약이라.” 이어 11절은 가나안 땅을 주어 이스라엘의 기업이 되게 했다며 언약의 성취를 확인한다. 이렇게 메모가 된다. ‘아브라함과의 언약’, ‘이삭과의 맹세’, ‘야곱과의 율례’. 물론 이 셋은 가나안 땅으로 뻗어간다.

이제 각각을 들여다보자. 아브라함을 향한 언약은 창세기 12장이다. ‘지시할 땅복의 근원을 말씀하셨다. 이삭을 향한 맹세는 창세기 22장이다. ‘큰 복(천하만민의 복)’별과 모래 같은 후손들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맹세는 대적의 문(원수의 城門, 음부의 권세)’이다. 야곱을 향한 율례는 시편 147편이 요약해준다. 야곱의 율례가 이스라엘 후손에게 율법으로 정형화되었다.

그런데 말이다, 아브라함과의 언약이나 이삭과의 맹세는 하나님이 친히 나타나셔서 명하신 것이지만, 야곱의 율례는 친히 나타나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율법을 주신 것은 모세에게 친히 나타나심으로 성사된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야곱은? 야곱에게 하나님이 친히 나타나신 것은 창세기 32장이다. 28장의 벧엘 사건은 꿈에서이다.

32장이 뭔가? 얍복 강가의 씨름이다. 환도 뼈가 부러지고 피부에 맞닿으면서 하나님을 친히 만났다. 아브라함이 12장을 잊을 수 없듯, 이삭은 22장을, 야곱은 32장에 사무칠 것이다. 32장의 핵심은 뭘까? 그것은 하나님과 겨루어 이기었음이다. 이를 하나님의 천사가 명명했을 정도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이 이름이 부여된 것은 단순하지 않다. 이스라엘 역사 전반에 영향력을 세게 끼쳤다.

야곱은 이기는 삶이었다. 삼촌 라반 집에서 고생을 겪었으나 최후엔 성공했다. 형을 속였었고 얍복 강가에서도 화술과 지략으로 설득했다. 아버지께는 축복도 몰래 받았다. 이제 사람을 넘어 하나님도 이겨버린다. 시무언은 이를 하나님도 꺾을 만큼의 고집이라고 했다. 야곱은 이미 형 에서를 속였고, 아버지를 속였고, 하나님의 의지를 꺾었을 뿐만 아니라, 그 이름 이스라엘을 자손에게 기업으로 주었다. 이스라엘 이름을 가진 자는 이미 하나님의 의지를 꺾은 자들이다.”

이게 야곱이다. 이게 구약의 이스라엘 민족이다. 사람들과 하나님을 이길 만큼, 야곱의 수고와 노력, 그 불굴의 의지를 높이 살 수 있겠다. 그러나 야곱의 태도에서 보이지 않는 것이 있다. ‘순종이다. 오히려 노력’, ‘의지’, ‘전략’, ‘경쟁등 인간적인 것들이 너무도 짙게 풍긴다. 이게 야곱의 아버지 이삭과 너무도 선명히 대비된다.

이삭은 창세기 22장이 클라이맥스다. 집중해 읽으면 한 단어가 반복된다. ‘독자. 혹은 . 그만큼 중요하다. 독자를 드리는 순종과 희생을 하나님은 기쁘시다 못해 충격으로 받으셨다. 아버지의 뜻에 순종한 아들의 모습, 곧 아브라함의 뜻에 순종한 이삭의 22장은 놀랍게도, 장차 아들 예수께서 침례와 십자가로 순종하는 모습을 데자뷔 한다.

이삭을 향한 하나님의 맹세는 셋이다. ‘큰 복(천하만민의 복)’별과 모래 같은 후손들’. 더 중요한 것은 대적의 문이다. 이 셋은 바로 네 아들 독자라도 아까지 아니하였으니때문이었다. 헌신과 순종 때문이었다. 바로 여기서 이삭과 야곱이 극단적으로 대비된다. 인간적인 모든 수고와 노력, 경쟁들 곧 인본주의가 진하게 배어 나오는 야곱의 삶과, 비록 상한 갈대와 꺼져가는 심지, 어린 양 같으나 결국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이삭의 순종이 너무도 다르다.

이삭의 재건은 순종과 대적의 문이다. 이삭이 보여준 아버지를 향한 순종’(이는 아브라함의 헌신과 함께 꽃 피운다), 이 순종에 응답하신 하나님의 맹세이다. 특히 대적의 문을 부수리라는 맹세다. 이 맹세는 야곱에게는 왜곡되었으나, 마침내 수천 년 뒤 예수를 통해 음부의 권세가 깨어짐으로 성취된다. 성락교회에 이 맹세의 사명을 맡기셨다. 누구보다 영적 존재를 알며 마귀를 이기며 음부의 권세를 깨뜨린다. 이는 이삭이 보여준 헌신과 순종을 통해서만 된다. 이게 이삭의 재건이다.

참조: 202010월 환언특강들

|그림: 박한상 목사(월산재단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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