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인문학/56강] 순교자 져스틴과 로고스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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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인문학/56강] 순교자 져스틴과 로고스 신학
  • 주일뉴스
  • 승인 2020.12.10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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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고스 이론으로도 유명한 순교자 져스틴 (Justin Martyr)
▲ 로고스 이론으로도 유명한 순교자 져스틴 (Justin Martyr)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1:1). 사도 요한은 성령에 감동되어 복음서를 써 내려갔다. 헬라어로 말씀은 로고스(λόγος)이다. 이 말씀인 로고스가 어떻게 선재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이해가 되는가에 대한 해답은 많은 논의를 요한다. 요한복음 114절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라고 말씀(로고스)의 성육신 사상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육체로 나타나심을 분명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믿음 차원이 아닌 체계적이고 철학적 설명인 교육 차원에서의 설명은 많은 배경 지식이 필요해 보인다. 신학은 믿음을 보편화하여 일반 학문으로 그 설명이 가능하도록 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져스틴은 진정한 의미의 최초 초대교부로서 기독교 사상을 기존 철학과 조화를 이루며 출범시켰다. 서기 100년경 팔레스타인에서 태어난 져스틴은 비교적 넉넉한 집안 사정 덕분에 여러 교사를 찾아 다니며 공부하였기에, 스토아학파와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플라톤학파 등의 가르침을 섭렵하였다.

그는 특히 플라톤주의에서 말하는 물질세계의 덧없음과 영적 세계의 참다움, 그리고 영원한 진··미 개념들에 사로잡혀 자신이 생각한 철학의 목표인 신을 보는 것에 가까이 왔다고 생각하였다. 그때 그는 바닷가에서 어떤 노인을 만나 기독교를 소개받았다. 노인의 추천대로 져스틴은 히브리 선지자들의 책을 읽음으로 참되고 무오한 철학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기독교가 처음 등장하였을 때 진리의 탐구’, ‘신의 존재’, ‘내세또는 영적인 세계의 탐구’, ‘삶의 윤리관등 기존 철학이 말하는 논제들을 모두 포함하고 있었기에 기독교는 많은 철학들 중의 하나로 인식되거나 타 철학 사상들과 경쟁 관계로 여겨지기도 하였다.

저스틴은 그의 저서 변증대화에서 기독교란 이론적으로 참된 철학이며 실제로 거룩하게 살고 거룩하게 죽도록 명하는 새로운 율법이라고 표현하였다. 저스틴은 기독교인이 된 후에도 계속 철학이라는 옷을 입고 자신의 방식으로 기독교를 이해하였으며 이교도들을 상대로 변증해 나아갔다.

당시 플라톤학파와 마찬가지로 져스틴은 하나님()의 위대함과 세상과의 거리감을 강조하였고, 이를 중개할 실체 (플라톤학파에서 말하는 세계영혼, 스토아 학파의 로고스)로서 로고스 이론을 전개하였다. 로고스는 하나님 안에 신적 이성(divine Reason)으로 존재하시는데, 때가 이르러 하나님께서 그의 사고를 말하시자 마치 그의 연설이나 단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별도로 로고스가 존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로고스의 발현으로 하나님은 잃으시는 것이 없으며 이는 하나님과 별도의 힘도 아니고 로고스의 발현으로 하나님이 둘이 되는 것도 아니라고 설명한다. 이에 대한 설명으로 져스틴은 말하길. “우리가 단어를 말할 때 단어(또는 이성)을 우리 안에서 내놓는다.

하지만 이는 우리 내면에 있는 단어의 감소를 초래하지는 않는데 이는 단어를 말함이 단어가 양적으로 잘려 나아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와 유사한 현상으로는 불이 이동함에서도 볼 수 있는바, 불이 붙여질시 원래의 불은 감소되지 않은며 붙여져 간 불은 원래의 불을 감소시키지 않은채 그 자체로 계속 존재하는 듯 보이는 이치이다.”

▲ 빌라도 앞에 선 그리스도, 작가:Master of Cappenberg (Jan Baegert?), 1520년경 추정. 런던국립미술관 소장.
▲ 빌라도 앞에 선 그리스도, 작가:Master of Cappenberg (Jan Baegert?), 1520년경 추정. 런던국립미술관 소장.

로고스는 세상의 창조를 위하여 나오셨으며 창조 후 하나님과 세상간 중재자로서 계속 존재한다고 져스틴은 이해하였다. 또한 그는 구약시대에 나타난 하나님은 하나님의 이땅에 대한 사자로서 로고스이며, 선지자들에게 영감을 주었다고 이해한다.

이는 플라톤학파에서 이야기하는 지고의 신과 이보다 열등한 세계영혼 사상을 재배치한 것으로 보이지만, 져스틴의 이론은 로고스를 역사적 인물인 예수 그리스도로 본다는 면에서 플라톤학파와는 색다르다. 그리스도는 로고스이며 그를 통하여 세상이 만들어 졌고 현재 세상을 다스리고 계시다 라고 그는 이해하였다.

져스틴은 기독교 변증적 차원에서 설명하기를, 시기적으로 플라톤보다 모세오경이 훨씬 오래 되었으며, 플라톤은 성경을 읽음으로 지식을 얻었기에 플라톤학파의 사상과 기독교사상은 유사점이 많다고 주장한다. 시기적으로 모세오경 작가가 플라톤 저서를 읽을 수는 불가능하다. 이는 당시 사변에 있어 보다 오래되었음은 좀더 신뢰할 수 있다라는 주장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플라톤은 완전히 성경을 이해하지 못하였기에 로고스의 씨앗 만을 소유하였지만 기독교인들은 로고스 자체를 소유하였다. 계속 져스틴은 주장하기를, 로고스는 하나님의 이성으로 인간에게 로고스를 역시 제공한다. 이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합리성, 즉 자신의 로고스는 신적 로고스로부터 왔으며, 이 로고스를 소유함으로서만 합리적인 사람이 된다.

이런 설명은 스토아학파의 사상과 매우 일치하는 것인데, 이는 져스틴에게 기독교신자의 구분을 모호하게 하는 원인을 제공하기도 하였다. , 져스틴의 표현에 의하면 로고스의 씨앗을 소유함으로 합리적으로 사는 사람들은 진리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기에, 합리적 인생을 산다는 것은 그가 결코 복음을 듣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로고스이신 그리스도를 따른다고 말할 수 있으며, 이러한 의미에서 그리스도가 오시기 이전 살았던 선지자들이나 철학자들도 기독교인이라 말할 수 있다라는 주장이다. 이는 다른 종교에 대한 져스틴의 모호한 관대함을 보여주는 일면이기도 하지만, 이와 관련 그의 사상은 여러 문제점과 과제를 남기고 있다.

져스틴의 로고스에 관한 이해는 조직적이지 못하고 모호한 면이 있다. 그는 로고스를 예수 그리스도로 보았지만 그 신적 신분에 대하여는 명확히 밝히지 않았는데, ‘로고스에게 예배를 언급하고 두 하나님을 이야기 하기도 하였고, 또 이는 성부 다음 두 번째 위치 또는 자격으로 예배를 받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이는 후에 로고스를 하나님으로 보는 견해와 피조물로 보는 견해들 간 분쟁의 실마리를 제공하였다고도 볼 수 있다. 한편 져스틴의 해석대로 로고스가 하나님과 세상 사이 중재의 위치에 있다면 성육신한 로고스인 예수는 어떤 역할을 하고 또 성육신은 왜 필요하였을까? 후에 니케아공회(325) 이후 신학자들은 이 문제를 로고스는 성부와 동등하시며 성육신 사건은 하나님이 세상과 만나고 예수는 중재자라 설명한다.

하지만 져스틴에게 성육신 하기 전 로고스는 이미 중재자였으며 로고스에 비하여 예수에 관한 묘사가 아주 빈약한 면이 있다. 이런 문제점들에도 불구하고 져스틴은 기독교인으로서 당시 철학적 개념을 이용하여 새로운 사고방식을 창출하였다는 면에서 매우 큰 공헌을 하였음은 틀림이 없다.

초기 기독교 사상은 허공 위에 이루어 지지 않았다. 분명 하나님의 계시와 계획된 사건들에 의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인류의 구원사역은 이 땅에서 이루어지고 그의 가르침과 기독교의 기본 교리들은 점차적으로 우리에게 주어졌지만 이를 정리하고 체계화 하는 데는 당시 학문의 영향이 전혀 개입하지 않았다고 볼 수 없다.

고대 그리스 철학의 사상 중 로고스의 개념은 이런 면에서 매우 주목해 볼만하다. 이상세계와 현실세계와의 간격의 괴리를 이야기하는 플라톤주의는 그 사이를 중개하는 중재자의 개념을 우리에게 던져 주었고 이는 스토아학파의 합리적 사고라는 로고스 사상으로 연결되었으며, 한편 유대인이며 플라톤학파 철학자인 필로를 통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 개념과 플라톤의 중재자 개념이 어우려져 로고스 개념이 일층 기독교사상에 다가옴을 볼 수가 있다.

이를 져스틴이 예수그리스도에 적용하고 명칭함으로서 기독교 로고스 사상체계가 출발 하며 이를 근간으로 향후 기독교의 기본 교리인 삼위일체와 기독론사상이 형성된다. 하지만 이러한 기독교 교의학의 출발은 향후 지역적, 언어적 차이와, 이로 인한 역사적 수많은 논쟁을 예고하고 있다.

 

글쓴이: 이병선 교수(베뢰아국제대학원대학교 교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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