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평등의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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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평등의 그늘
  • 주일뉴스
  • 승인 2020.09.08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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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정신은 차별이 없는 것이다.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무론하고 만민이 평등한 것이다. 그 어느 누구도 출신성분, 종교, 철학, 사상에 있어서 자유를 누릴 수 있고 자신의 의견을 어떠한 형태로든 어느 장소에서든지 피력할 수 있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복음 안에서의 평등을 의미하며 하나님 아래에서의 자유를 말한다. 나의 자유가 남에게 거침이 된다면 마땅히 나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기독교 정신이다. 나의 자유함을 주장하면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마음에 그늘을 드리우게 한다면 이것은 기독교의 본질에 위배되는 것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평등의 이름으로 너무나 많은 것들이 방종되고 있다. 소수민족을 비롯한 다양한 형태의 소수자들을 마땅히 보호하고 배려해야 하는 것이겠지만 오히려 주객이 전도되어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고 다수가 불편을 겪는다면 넘치는 자유 덕분에 예기치 않은 갈등과 피해를 겪는 것이다.

성소수자도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가 따뜻하게 보호하고 바른 길로 인도해야 할 책무가 있는 지체들이다. 그러나 무작정 그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각종 익명 원칙과 혜택들을 부과한다면 마땅히 고쳐야 할 문제를 고치지 못하고 더욱 내면으로 깊게 곪아 터지도록 하는 일이 되고 말 것이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아야 하는 형국이 벌어지는 것이다.

포괄적 차별금지는 그 말이 가진 아름다운 느낌에도 불구하고 많은 그늘이 도사리고 있는 위험스러운 주제이다. 우리 사회의 어느 누가 차별을 원하겠는가. 우리 중 어느 누가 연약한 자들에게 돌을 던지고자 하겠는가. 그러나 약자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이 지나치면 전체 사회가 중병을 앓게 될 수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소수민족과 노약자, 여성, 장애인, 동성애자 모두 우리가 함께 지키고 보호해야 할 사람들이며 성경은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그들을 보살피도록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을 지키고 보살핀다고 하는 것은 그들에 다른 다수 위에 특별한 혜택과 우월한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헌법 가치 속에서 자유를 누리며 평등을 말할 때에는 당연히 책임과 의무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사회는 어느 개인이나 특정 집단의 편의와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스스로 사회에 기여하고 양보함으로써 전체의 질서가 유지되고 각자에게 기회의 평등이 주어지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평등이란 결과의 평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기회의 평등을 의미하는 것이다. 노력한 사람이 열매를 먹도록 하는 것이 평등이지 모든 열매를 각자 균등 분배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성경이 말씀하는 바에 따르면 누구든지 땀 흘린 자가 열매와 소산을 얻게 되어 있을 뿐 아니라 천국에서도 각자 행한대로 모든 영광들이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마귀는 성경과 정반대로 누가 무슨 일을 하든지 공동생산 공동분배를 주장한다. 그러므로 사람의 동기와 과정을 부정하고 결과와 생산에 있어서 균등한 소유를 정당화한다. 성경은 누구든지 충성하는 자에게는 더 많은 것을 맡기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게 될 것임을 경고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처럼 기독교 신앙과 사회주의 사상 간에는 가까이 공유할 수 없는 근본적인 차이가 극명하게 존재한다.

차별금지법 제정문제가 우리 사회에 뜨거운 화두가 되어 온 지 오래이지만 기독교는 분명 차별을 정당화하지 않는다. 다만 차별 금지를 위한 법이 과연 우리 사회에 다수와 소수를 균형감있게 배려할 수 있는 법인지에 관해서는 사회 각계로부터 보다 폭넓은 논의와 의견수렴이 반영되어야 할 것이다.

사회주의국가들은 평등을 지향하여 모든 생산물과 생산수단을 국가가 통제하는 획일적 평등을 실시하였으나 결과는 그 어느 누구도 자신의 꿈을 위해 노력할 수 없는 지옥같은 현실이 벌어지고 말았다.

그러므로 우리가 평등이라는 단어에 관하여 이야기할 때에는 그 단어가 가진 칼날의 양면같은 성질을 염두에 두고 신중하게 접근하지 않으면 감상과 구호에 선동되어 마치 소수를 위해 다수를 희생시켜도 좋을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될 것이다.

글쓴이 l 이한센안수집사(브라운아이성형외과 원장, 의학박사, USMLE/USC임상연구원/SBU임상교수), 주일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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