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벽 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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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 재건
  • 주일뉴스
  • 승인 2019.11.29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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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건’이란 단어가 성경(개역한글판)에는 나오지 않는다. 대신 ‘중건’이란 단어로 채워져 있다. 의미가 살짝 다르다. 건축물처럼 유형(有形)의 무엇을 보수하거나 고쳐 지을 때 중건(重建)이란 단어를 쓴다.

재건(再建)을 쓸 때는 건축물도 포함하지만, 무형(無形)의 이념이나 사상, 조직을 다시 세우는 것을 뜻한다. 성경에는 성벽을 보수하는 내용이 나오기에 ‘중건’을 쓴다.

성벽 재건은 느헤미야서에 나온다. 유대교 신앙의 핵심은 안식일, 율법, 성전이다. 눈에 보이는 성전이나 성벽이 무너져 있으면 신앙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백성들이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가 성전 아닌가. 성전이 온전한 기능을 하려면 우선 성벽을 튼튼히 쌓아야 했다.

정치, 경제, 무역 모두 이곳을 중심으로 뻗어 나갔다. 헤롯은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려고 했다. 가장 크고 웅장하게, 오랫동안 지은 성전이 헤롯 성전이다. 제자들은 예수께 ‘이 성전을 보소서’라며 자랑했다.

성벽 재건은 리더가 앞장섰다. 첫 삽을 느헤미야가 떴다. 주목할만한 것이 둘 있다. 왕의 재가를 받았지만, 그는 아주 비밀스럽게 행동했다는 점이다. 분열파인 산발랏과 도비아가 최대한 눈치채지 못하도록 말이다.

그 이유를, 중요한 일은 열정과 노력만으로 되지 않는다고 성경은 말한다. 두 번째는 친히 복수도, 억울함의 항변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분열파를 맞받아치지 않았고 자기에게 맡겨진 사명만 충실히 감당했다.

느헤미야의 성벽 재건 스토리가 교회분쟁을 겪고 있는 한국교회에 시사하는 것은 뭔가? 성벽 재건은 리더 혼자만의 일이 아니다. 느헤미야가 선두에 섰으나, 함께 하지 않으면 불가했다. 분열파가 온갖 선동과 괴담으로 재건을 방해했으나, 백성들이 한마음이 되었을 때 이겨내고야 말았다.

또 혹시 내가 하는 작은 일이 의미가 있을까 교회 회복에 도움이 될까 하는 염려는 하지 마시라.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꼭 책임지시기 때문이다. 각각의 교회를 통해 하나님께서 하실 일은 중요하고 분명하다. 느헤미야처럼 자기 사명만 잘 감당해도 충분하다.

큰 그림이 없더라도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을 성실히 감당하는 것에 관해, 시무언은 이렇게 설명한다. “산을 바라볼 때 자기가 서 있는 곳만 보인다. 산 너머는 볼 수 없다. 우리도 천사를 다 모른다. 천사들도 우리 인간을 다 알지는 못한다. 이는 느헤미야서에 기록된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것과 같다.

백성들은 자기 집에서 보이는 곳만 재건했다. 장사를 하든, 농사를 하든, 침실에서 잠을 자든, 보이는 쪽의 성벽만 보수하고 재건했다. 순전히 보이는 방향만 성실히 감당한 것이다. 그러나 모든 방향이 하나를 중심으로 완성되어 갔다.”

천사는 천사의 일을, 사람은 사람의 일을 각각 감당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인자는 인자로서의 일을 감당하셨으니 이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셨다. 때와 기한에 관해 권한이 전혀 없는 우리는 오직 맡겨진 사명만 잘 감당하면 되는 것이다.

교회의 회복과 재건도 마찬가지다. 내게 새겨진 큰 그림이 없을지라도 나 맡은 지킴이의 자리, 목양사의 직분, 새벽 기도의 방석은 결국 ‘성벽 재건’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성벽 재건, 곧 교회 회복과 관련해서 절대 기억해야 할 두 가지가 있다. 이는 교회의 존재 이유와 일맥상통한다. 첫째, 교회는 음부의 권세와 싸운다는 점이다. 예수께서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하셨다(마 16:18).

교회는 주님이 세우신 주님의 것이요, 음부라는 대응할 맞수가 있다. 음부의 세력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끊임없이 교회를 공격하는 음해세력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작금, 한국교회를 강도질하는 음부의 권세가 거세지 않나? ‘등 따시고 배부른’ 신앙생활은 없다.

둘째는 하나님의 유일한 희망은 교회뿐이라는 점이다.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 일하시지, 새로운 기관이나 모임을 상상도 않으신다. 국회도 법원도 NGO도 하나님의 희망이 아니다. 하나님은 결코 교회를 없애거나 갈아엎으시려는 분이 아니시다. 음부의 권세가 결코 이기지 못할 대상으로 확정하신 것은 교회뿐이다. 계시록의 일곱 교회는 거의 모두 책망받는 교회였으나 예수께서 붙잡고 쓰신 곳이다. 교회만이 희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에 나오는 여러 재건의 스토리를 묵상해봤다. 성경은 놀라운 것을 기록한다. 재건은 남은 자들의 분깃이다. 남은 자들이 목숨 걸고 지켜냈다. 어려웠으나, 최고의 상급을 받는 최고의 기회였다. 떠난 자들은 멀찌감치 바라만 본다. 기도도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역사에서 지워졌다. 구약교회든 신약교회든 떠난 자들은 모두 사라졌다.

열 명의 정탐꾼, 롯과 두 딸은 어디로 갔나? 바알에 무릎 꿇은 자들, 여로보암과 함께 떠난 열 지파는 어디에 있나? 감람산에서 예수 승천을 본 자는 오백 명. 다락방에서 성령 강림을 본 자는 백이십 명. 열흘 사이에 삼백팔십 명이 사라졌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남은 자인가 떠난 자인가? 남은 자들은 환난과 역경 중에도 끝까지 교회와 진리를 수호하는 자들이다. 주 예수 오심을 대망하며 죄악과 짝하지 않는 자들이다. 불시련과 악조건을 견뎌낸다. 마침내 무너진 성전을 재건해낸다. 더 튼튼하게!

참조: 『하나님의 완전한 계획(하)』

글|그림: 박한상 목사(월산재단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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