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인문학/54강] 기독교 교회의 역사와 우리의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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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인문학/54강] 기독교 교회의 역사와 우리의 위치
  • 주일뉴스
  • 승인 2019.11.29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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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시기적으로 21세기, 장소적으로는 대한민국 서울, 아니 넓게는 세계를 목장으로 삼으며 성경에 입각한 신령한 말씀으로 영혼을 양육 받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신사적인 품성을 추구하는 베뢰아운동을 하고 있는 베뢰아사람들이다.

교회창립 50주년을 맞이하여 우리는 역사적으로 그리스도의 교회 형성과 그 발자취를 간략히 돌아보며 우리의 현주소와 미래를 진단하고자 한다.

▲올해로 교회창립50주년을 맞은 성락교회(대표 김성현 감독권자)는 교회분쟁의 아픔과 고난을 조속히 극복하고 새로운 50년을 향해 복음의 빛을 비추는 베뢰아운동의 전초기지가 될 것이다.
▲올해로 교회창립50주년을 맞은 성락교회(대표 김성현 감독권자)는 교회분쟁의 아픔과 고난을 조속히 극복하고 새로운 50년을 향해 복음의 빛을 비추는 베뢰아운동의 전초기지가 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과 이어 신자들에게 약속하신 성령이 내려옴으로 기독교 교회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교회사적으로 오순절 성령강림을 교회의 시작으로 보고 있다. 이는 승천하신 그리스도의 약속이 실현되었고 이로 말미암아 모든 신자들이 성령을 받아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일에 참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기독교 교회는 성령의 사역이 그 중심이며 출발점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 사유로 교회에는 성령의 역사가 지속되어야 함이 명제이다.

초대교회 초기에는 성령의 사역이 넘치는 현장을 보여주고 있다. 교회의 구조는 초기 카리스마적 지도자들에 의한 지도력으로 인도되어 왔으나 차츰 교회에 3분법적 질서가 자리를 잡으면서 교회 내부의 질서에 의존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는 군주적 감독과 장로, 그리고 집사의 구조로 개교회를 이끌어 가는 기본 질서가 확립되었다.

교회 성립 초기에는 성도들에게 아직 무엇을 가르처야 하는지에 대한 사상적 교리적 체계가 서지 못하였고 또 외부적으로 로마제국의 핍박에 대항하여 성도들을 이끌어 가야 할 강력한 지도력이 필요하였기에 교회 지도자인 감독에 의존하는 경향이 뚜렷하였다.

▲콘스탄틴대제의 정치적 라이벌인 막센티우스와의 전투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콘스탄틴대제의 개선문,  Arco di Constantino) ⓒNAVER
▲콘스탄틴대제의 정치적 라이벌인 막센티우스와의 전투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콘스탄틴대제의 개선문, Arco di Constantino) ⓒNAVER

각 교회의 감독들은 성령에 의지하여 로마제국 어디를 가나 보편적인 신앙과 함께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일반적이며 통일된 보편적인 교회, 즉 이러한 의미의 헬라어인 카톨릭교회를 추구하였다. 이러한 성향은 콘스탄틴대제에 의한 기독교 공인 이후에 더욱 박차를 가하여 교회의 제도적 사상적 통일을 꾀하여갔다.

교회에 성령의 사역과 함께 유사한 비중의 주제로 떠오른 사항은 그리스도의 임재였다. 교회란 원래 에클레시아’, 즉 모임을 말하여 신자들의 모임이 교회를 의미한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신앙과 교회가 형성되었기에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 되시고 아울러 교회는 그의 몸을 이룬다 (1: 20-23). 따라서 교회에는 문자적으로 그리스도가 임재하여야 한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임재는 어떠한 형태로 주장되어 왔을까? 물론 교회에 들어가 엄숙한 분위기에서 기도를 하다보면 막연히 그리스도가 나와 함께 하신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초대교회 성도들은 그리스도와 함께하신다는 의미를 성찬에서 찾으려 하였다.

▲성찬은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 ‘그리스도의 임재’를 기념했던 것(사진: 카타콤에 그려진 빵을 떼어 먹는 성찬식 장면) ⓒNAVER
▲성찬은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 ‘그리스도의 임재’를 기념했던 것(사진: 카타콤에 그려진 빵을 떼어 먹는 성찬식 장면) ⓒNAVER

예수께서는 마지막 만찬 시 제자들에게 떡과 잔을 주시며 이것이 나이 몸과 피라고 하셨다. 이에 교회에서는 아주 초기부터 주의 만찬을 함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기념하였다. 교인들은 떡과 잔을 나누며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그들과 함께 함을 느끼었다. 그렇다고 초대교회 시기부터 떡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바뀐다는 화체설을 믿은 것은 아니다. 화체설 교리는 13세기에 와서야 로마카톨릭 교회 내에서 교리화되었다.

4세기 기독교의 공인 이후 교회의 제국화 시기에 교회건물의 건축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성전에 신자들과 함께 있음을 나타내고자 표현을 시도하였다. 중세 건축기술의 발전은 그러하기에 교회를 높이 쌓아 올리는 데에서 기인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높이 솟은 교회 첨탑과 스테인드글라스는 예수를 품은 마리아적 교회의 모성과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승리를 그리고 있다.

그리스도의 임재에 대하여 성찬을 통하여 이후로도 꾸준히 주장 되어왔다. 종교개혁 시기에 마르틴 루터는 화체설과 유사한 공재설을 주장하였는데 이는 그리스도 신성과 인성의 결합에 의한 그리스도의 편재설에 근거를 두고 있다. 즉 그리스도의 신성이 있는 곳에는 어디나 인성이 있기에 시공간의 제한을 받지 아니하는 신성과 참다운 결합을 한 인성이 항상 신성과 공존하고 이에 따라 성찬 시 그리스도가 임재한다는 논리이다.

이에 대하여 쯔빙글리는 그리스도의 몸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시므로 성찬 시 임재할 수가 없으며 떡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상징할 뿐이라는 상징설로 반박하였다. 이에 칼빈은 영적 임재설을 주장하는데 이는 삼위 하나님의 행동이 각 위격으로 분리될 수 없으니 성찬 시 그리스도는 영적으로 임하는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성도와 늘 함께 한다는 개념과도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이런 개혁사상가들의 교리싸움에 개신교 대부분의 성도들은 그 자세한 이해보다는 기념설 또는 상징설로 성찬을 기념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침례(출처: 런던국립미술관)
▲그리스도의 침례(출처: 런던국립미술관)

침례는 교회의 성례로서 주님의 지상명령(28:18-20) 이기도 하기에 교회사 초기부터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침례의 중요성은 그리스도의 사역이 침례로부터 시작되었음을 상기하여 볼 때 분명하다. 그가 요단강에서 침례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심으로 성령이 하늘로부터 내려오고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라는 선포가 있었다.

이후로 예수는 성령의 인도하는 공생애를 지내셨기에, 침례와 성령으로 말미암은 능력은 그리스도와 나아가 일반 신자의 신앙생활에까지 연장되고 있다. 기독교 초기 유대교와 혼재한 상태에서도 기독교인으로 들어오려면 꼭 침례의식을 거치었다.

침례는 기독교 입문식의 역할을 처음부터 하였기에 기독교인은 이후로 믿음을 스스로 고백하며 온몸이 물에 잠기는 침수침례를 실행하였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하기에 예수와 연합하여 그와 함께 장사되고 또 성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나 새 생명의 삶을 사는 것이다 (6: 3-11). 침례는 이제 기독교에 있어 신학적 그리고 실천적으로 필수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요단강에서 침례받는 순례객들
▲요단강에서 침례받는 순례객들

그러나 초기 침례의 죄를 씻는다는 의미로 인하여 그리고 여기에 원죄론의 정착과 함께 어린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침례를 받는 유아세례의 행습이 교회에 정착하게 되었다. 물에 잠기는 침례의 형태도 물을 붓거나 뿌리는 관수나 세례의 형식으로 바뀌게 되어 성경의 가르침에서 점차 벋어나고 말았다. 어린아이를 기독교인으로 키운다는 유아세례식은 교회의 행사로는 좋아 보였으나 정작 수침자 아기 본인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를 일이었다.

이러한 침례의 왜곡에 대항하여 16세기 종교개혁 시 재침례파는 신자들의 침례를 주장하였다.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부모에 의하여 행하여진 침례는 그 의미가 없기에 그들은 신자들의 성인 침례를 베풀었다. 또한 곧 완전 침수에 의한 침례를 주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들은 국가와 교회의 분리를 주장함으로 더욱 힘들어젔다. 종교는 국가로부터 온전한 분리를 통하여서만이 올바른 교회를 세울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정교분리의 원칙은 아직 시대적으로 너무 이른 주장이였기에 재침례파들은 카톨릭과 다른 개신교도들로부터 합동적 핍박을 당하게 되었고 대부분의 재침례교도들과 지도자들은 죽음으로 그 신앙을 지켜야만 하였다.

▲재침례교의 역사를 새롭게 조명한 윌리암 에스텝 (William R. Estep)의 ‘재침례교도의 역사, The Anabaptist Story) ⓒNAVER
▲재침례교의 역사를 새롭게 조명한 윌리암 에스텝 (William R. Estep)의 ‘재침례교도의 역사, The Anabaptist Story) ⓒNAVER

침례의 진정한 의미를 강조하던 이런 정신은 영국교회 분리주의에서 침례교라는 신앙적 무리가 탄생하게 되었고 이들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으로 이주한 청교도 정신과 부합하여 미국땅에서 점차 그 꽃을 피우게 된다. 미국의 신앙부흥운동과 함께 전국적으로 퍼진 신앙의 자유에 대한 열정은 개교회주의를 주장하는 침례교가 유럽에서보다는 미국에서 부흥하여 점차 개신교 최대 교단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선교사 알렌으로 시작된 한반도에서의 기독교 전파는 한민족의 신앙에 대한 열정으로 말미암아 좋은 토양에 뿌리를 내린다. 일제침략으로 인하여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신앙을 지켜가며 민족해방의 염원이라는 애국충절의 신앙열정이 자유민주주의와 부합하여 이 땅에서 해방 후 개신교 부흥의 꽃을 이룬다.

▲1969.11.30.일 영등포구 신길동에서 김기동 원로감독에 의해서 개척된 이후 20여년 만에 세계 최대의 침례교회로 성장하였고 이제는 세계를 목장삼아 베뢰아운동을 힘차게 전개하고 있다(구로구 신도림 소재 크리스찬세계선교센터 야경).
▲1969.11.30.일 영등포구 신길동에서 김기동 원로감독에 의해서 개척된 이후 20여년 만에 세계 최대의 침례교회로 성장하였고 이제는 세계를 목장삼아 베뢰아운동을 힘차게 전개하고 있다(구로구 신도림 소재 크리스찬세계선교센터 야경).

이러한 시기와 배경을 토대로 설립된 성락교회는 설립자 김기동 목사(시무언)의 영감을 바탕으로 하는 성경닮기운동인 베뢰아운동을 펼치며 개척 20여년 만에 세계 최대의 침례교회로서 도약을 하였다.

성락교회의 베뢰아운동은 단순히 성경이 말하고 있는 바를 그대로 믿고 실천하는 평신도운동이다. 그러하기에 초대교회의 시작부터 중요시해온 성령의 사역을 존중하며 지금도 그 역사를 강조하고 실행하고 있다. 이는 성락교회가 독립침례교회인 이유들 중의 하나이다.

역사적으로 침례교회는 출발부터 일반침례교회와 특수침례교회로 나누어져 교리적 긴장을 지속해 왔다. 이는 개혁신학 내부의 칼빈주의 예정론과 알미니우스의 자유의지론을 사이에서의 차이로 침례교회 내부에서도 지금까지 확실한 입장표명보다는 어려워하는 주제이다. 이 예정론 논쟁보다도 성락교회를 기존 침례교 교단과 다르게 만든 것은 성령은사의 중지론이다.

이는 성령의 은사가 더 이상 지속되지 않으며 특히 방언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반영하고 있는 신학사상이다. 침례교 내에 여러가지 신학이 있다고 하나 베뢰아운동이 추구하는 신학의 자유정신은 개교회주의를 중시하는 침례정신과 부합하여 신앙의 진리를 추구하는 독립침례교회로 나아가게 하였다.

▲올해로 교회창립50주년을 맞은 성락교회(대표 김성현 감독권자)는 새로운 50년을 향해 베뢰아사람의 신사적 태도와 성숙한 신앙을 바탕으로 새롭게 도약을 꿈꾸고 있다.
▲올해로 교회창립50주년을 맞은 성락교회(대표 김성현 감독권자)는 새로운 50년을 향해 베뢰아사람의 신사적 태도와 성숙한 신앙을 바탕으로 새롭게 도약을 꿈꾸고 있다.

베뢰아운동이 추구하는 또다른 신학은 하나님의 의도신학으로 이는 성경에서 나오는 진리의 진수를 담고 있다. 이는 경직된 교리체계가 아니며, 시무언은 지금도 성경 강해를 통한 끊임없는 말씀 전파를 하시기에 베뢰아와 시무언은 분리될 수 없는 관계이다. 침례에 관한 신학적 해석은 베뢰아를 더욱 귀한 신학으로 완성해 가고 있다.

이제 성락교회는 2세대를 맞이하여 도약을 눈앞에 두고 있다. 베뢰아사람의 신사적 태도와 성숙한 신앙을 바탕으로 성장하고 도약하는 미래의 교회를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의 교회 역사상 성경적이고 초대교회적인 베뢰아운동의 미래는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우리 자신의 어깨에 달려있기에 우리는 지금 우리 자손을 위한 교회건립에 함께하고 있다.

글쓴이: 이병선 교수(베뢰아국제대학원대학교 교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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