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기고] 개혁, 개혁주의자, 그리고 영분별이 필요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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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 기고] 개혁, 개혁주의자, 그리고 영분별이 필요한 이유
  • 주일뉴스
  • 승인 2019.07.30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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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열파가 주장하는 개혁?, 개혁자?, 개혁적 행위?
“'모두 성경적, 역사적, 사회적 명분이 없는 탐욕과 정욕과 거짓의 산물'이며 '희대의 종교 사기극'일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양의 탈을 쓴 이리 ⓒ표리부동(表裏不同)
▲양의 탈을 쓴 이리 ⓒ표리부동(表裏不同)

서울성락교회(이하 우리 교회로 표기함)는 무려 3년 넘는 긴 시간 동안 소위 개혁을 주창하며 일어난 무리로 인해 지난한 몸살을 앓고 있다. 초기에 그들은 소위 교회개혁의 의미조차 모르는 교인들 앞에서 자신들이 개혁자임을 선포하는 가운데, 교회 개척자를 음해하고 반개혁적 적폐로 몰아가며 사태를 키워 나갔다.

이후 거짓에 선동된 교인들을 세력 기반으로 하여, 교회 개척자에게 협박을 자행하고, 예배 분리를 통해 교회의 통합성을 파괴하고, 이를 통해 교회로 향해야 할 헌금을 도적질하고, 그 여세를 몰아 교회의 사명과 이상을 말살하려 해 왔다.

그들은 이것만으로 부족해 숱한 거짓을 생산하고 전파하면서 연약한 교인들을 실족시키고 교회의 사명과 질서를 존중하는 성도들을 폭행하고, 도적질한 자금을 홍보비로 투자해 거짓 기사와 방송을 유포하면서 전도의 문을 막으려 들었다. 그들은 이 같은 일련의 악의적 행위를 통해 교회당과 교회 운영의 전권을 탈취하려고 시도해 온 것이다.

이러한 악한 현상을 무려 3년 넘게 목도해 온 지금...

우리 성도들은 그들이 주창해 온 개혁, 개혁자라는 단어가 얼마나 불순한지, 그 단어 이면에 숨겨진 그들의 탐욕이 얼마나 저열한지 모두 잘 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점에 우리는 교회 내에 활보하고 다니는 자칭 개혁주의자들이 주창하는 개혁의 본질과 그들의 정체를 다시금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는 우리가 신앙을 영위하는 한, 끝도 없이 도전해 올 마귀적 전술의 시초와 그 전개를 정확하게 성찰함으로써, 나와 내 가정, 그리고 우리 교회의 영적 안위를 수호하기 위해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먼저 그들이 주창한 교회개혁이란 단어의 개혁이란 것이 과연 성경적인 것일까? 히브리서 910절에는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만 되어 개혁할 때까지 맡겨둔 것이니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처럼 성경에 개혁이란 단어는 단 한번 사용되고 있는데, 그 의미가 무엇인지는 그 다음 성구에 잘 나타난다.

,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10:11-12).”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이는 성경적 의미에서 개혁이란 결국 예수 그리스로의 십자가의 공로와 은혜를 통한 새로운 법과 질서를 의미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우리 교회는 설립 이후 베뢰아 운동을 통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와 은혜에 대해 끊임없이 가르쳐 온 복음적 교회라는 점에서 성경적 관념에서 새롭게 시도해야 할 개혁이란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우리 교회가 개혁되어야 한다는 그들의 주장이 성경적으로무리할 뿐 아니라, 그 자체가 바로 거짓 선동임을 함축한다.

▲입으로는 달콤한 말을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칼을 품는다 ⓒ구밀복검(口蜜腹劍)
▲입으로는 달콤한 말을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칼을 품는다 ⓒ구밀복검(口蜜腹劍)

그렇다면 그들이 주창한 개혁이란 마틴 루터를 시작으로 한 종교개혁이란 단어의 그 개혁에서 차용한 것일까? 중세 종교개혁의 핵심은 당시 개혁자들이 외친 5가지 이상, 즉 다섯 가지 ‘Sola'에 잘 나타난다.

이는 마틴 루터가 외쳤던 솔라 스크립투라(오직 성경), 솔라 그라티아(오직 은혜), 솔라 피데(오직 믿음)‘에 존 칼빈에 의해 솔루스 크리스투스(오직 그리스도), 솔리데오 글로리아(오직 하나님께 영광)‘가 더해져 마침내 완성된 종교개혁의 5대 강령으로 표현된다.

그런데 우리 교회는 처음부터 베뢰아 운동을 통해,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그리스도,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지속적으로 강조해 왔다. 이는 자칭 개혁주의자들이 주창해 온 개혁이란 단어는 우리 교회가 ’5sola'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동원된 것이 아님을 함축한다.

, 우리 교회가 개혁되어야 한다는 그들의 주장은 개신교의 역사적 이상에 비춰볼 때 무리할 뿐 아니라, 거짓된 선동임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그들이 주창해 온 개혁이란 단어는 성경에도, 종교개혁의 이상에도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들은 에클레시아 밖의 세상인 사회적 의미의 개혁 관념을 교회에 접붙일 목적에서 사용한 것일까? 아니다. 그렇게 보기도 어렵다. 사회적 의미의 개혁이란 정치, 사회, 경제, 문화적인 세상의 변화를 직시하고 그에 적응하기 위해, 행정 또는 경영주체가 조직의 제도, 기술, 문화 등을 변화시켜 나가는 의식적, 인위적 노력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의 개혁 놀음은 사회적 개혁이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인 전제인 문제제기의 사실성’, ‘문제제기의 균형성’, ‘제시하는 대안의 진정성’, ‘동원하는 수단의 적합성’, ‘개혁주창자의 자격과 도덕성모두 결여되었다는 점에서 사회적 개혁과도 거리가 멀다.

, 그들은 교회개척자의 비리를 주장하면서 이를 개혁의 주된 동기로 삼아 왔지만, 소위 X파일을 통해 선동해 온 성추문에 대해 단 하나도 검증하지 못했다. 이는 사회적 개혁의 전제이자 출발점인 문제제기의 사실성자체가 결여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히려 그들은 사실 자체가 아님을 알면서도 오직 리더에 대한 불신과 적개심을 키우고자 허위 주장을 날조한 후 거기에 소위 개혁이란 화려한 옷을 뒤집어 씌워 왔는데, 이러한 방식은 사회적 개혁과 거리가 먼 매우 저열한 행위이다.

재정운영에 대한 그들 주장도 마찬가지다. 그간 원로감독님께서 헌신해 온 영적, 물질적 기여의 분량은 그들이 정죄해 온 분량에 훨씬 차고도 넘친다는 점에서 그들은 소위 사회적 개혁의 출발점인 문제인식의 균형성에서도 한참 벗어났다.

▲양머리를 걸어놓고 개고리를 판다 ⓒ양두구육(羊頭狗肉)
▲양머리를 걸어놓고 개고리를 판다 ⓒ양두구육(羊頭狗肉)

그렇다면 교회 정치체계 변혁에 대한 그들 대안적 주장은 또 어떠한가? 그들은 초기에 감독제를 비난하면서 회중주의제로 이전하는 것이 개혁의 목표라고 주장한 바 있지만, 이는 단순히 군중몰이를 위한 선동적 기만행위에 불과했다.

현재 그들 내부의 운용방식 자체가 이도저도 아닌, 매우 기형적 양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은 애초에 회중주의제 표방 자체가 군중 동원을 위한 허구적 구호였다는 점을 의미한다.

또한 그들 대표의 선출방식, 제도수립과 운용, 재정기획과 운영 등 그 어느 하나도 회중주의 요소를 발견할 수 없다는 사실은 그들 주장에 애초부터 작은 진정성조차 없었으며, 회중주의란 이미 그들 내부에서부터 실패하고 붕괴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세상이 지향하는 사회적 개혁조차도 그 사명과 동원하는 수단 간의 적합성을 맞추려 노력하는데 반해, 그들의 개혁운동은 그간 교회파괴와 전도방해 행위로 일관되게 점철되어 왔다는 점에서 교회조직이 추구하는 사명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더욱이 그들 리더들은 교회 제도권 밖에서 당파를 지어 파괴적으로 도전해 왔다는 점에서 사회적 개혁주체로서의 자격도 없으며, 그 도덕성에 대해서는 언급할 가치조차 없다.

이처럼 그들이 주창해 온 소위 개혁이란 것의 정체는 성경에서도, 종교개혁 이상에서도, 사회 개혁적 관념에서도 전혀 명분을 찾을 수 없는 해괴하고도 기형적인 소산물로 볼 수 있다. 또한 그런 터무니없는 것을 소위 개혁이라고 주창해 온 자들의 정체도 성경적, 역사적, 사회적 어느 면으로 보나 겨자씨 한 알만한 정통성조차 기대할 수 없다.

그저 그들은 자기들을 추종하는 무지몽매한 무리들을 개혁이란 단어로 기만해 가며 자기 배를 불리기 위해 희대의 종교 사기극을 벌여 온 것이다. 또한 그들 거짓 개혁자거짓 개혁구호를 믿고 추종해 온 무리들도 이미 3년 넘게 따라 온 현 시점에서는 교회파괴와 전도훼방을 향한 사기극에 몽롱하게 취한 공범자로 밖에 볼 수 없다. 이러한 현상이 교회 내에서 벌어진 것 자체가 참으로 유감스러울 따름이다.

이 같이 그들의 개혁, 개혁자, 개혁적 행위라는 것은 모두 성경적, 역사적, 사회적 명분이 없는 탐욕과 정욕과 거짓의 산물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하나의 중요한 사실이 있다. 교인이라는 자들의 입과 손을 통해 전개되어 온 이 기괴하고도 패악한 일들이 과연 성경적으로 가능한 일일까 하는 점이다. 많은 이들은 교인이라면 그럴 수 없을 것이라고 흔히 착각한다. 하지만 성경은 너무나도 많은 말씀을 통해 이러한 일들이 이 말세의 징조로 교회 안에서 나타날 것임을 엄히 경고하고 있다.

교회 안에서 거짓과 분란을 일으키는 자들이 나타나고, 그러한 자들의 영적 배후가 누구이며, 그러한 패악한 행위의 결과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물론, 로마서, 고린도전서, 고린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등 거의 모든 서신서에 기록되어 있다.

심지어 3장에 불과한 디도서에까지 기록되어 있으며, 요한계시록에서도 경고하고 있다는 점은 말할 나위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현상을 영적인 시각에서 분별해야 할 필요성이 있으며, 성경 앞에서 한없이 겸손해져야 함을 다시금 깨달아야 한다.

이 말세에 우리 베뢰아인들은 분명하게 영분별 해야 할 과제가 있다. 우리의 영분별은 성경을 떠나, 천사의 가르침이나 환상이나 자신의 신념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들 언행의 열매가 얼마나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가르침에 정면으로 위배되는가, 성경이 얼마나 구체적으로 경고하는가에 대해, 성경을 꼼꼼히 상고하는 가운데 명확히 분별해야 한다.

그것이야 말로 악한 영적 세력의 도전 앞에서 우리가 실족하지 않고, 하나님의 법 안에서 우리 교회가 승리하며,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연단의 결과, 신앙의 성장과 복을 누릴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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